[그림책을 보다] 이 집에는 가족의 어떤 추억이 있을까 《언덕 너머 집》
[그림책을 보다] 이 집에는 가족의 어떤 추억이 있을까 《언덕 너머 집》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7.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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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블랙올 지음, 정회성 옮김, 비룡소, 2023년 6월. (이미지=비룡소 제공)
소피 블랙올 지음, 정회성 옮김, 비룡소, 2023년 6월. (이미지=비룡소 제공)

지금 집에 산 지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동안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랐고, 가족 모두 큰 탈 없이 작은 행복을 누리며 집과 함께 나이를 먹었습니다.

늘어난 살림살이라곤 책 수십 권과 더운 날을 견디다 못해 하나 더 장만한 선풍기와 고장 난 전기밥솥을 새 걸로 바꾼 것입니다. 적어도 십 년 이상 되었고 어떤 것은 이십 년이 넘은 살림살이들과 함께 살다 보니 그에 얽힌 추억이 참 많습니다.

아무리 기름칠을 해도 더이상 반짝거리지 않는 나무 숟가락은 아이가 어릴 적 훌륭한 장난감이 되어 주었고, 닳아서 두 군데나 구멍이 뻥 뚫린 주방 장갑은 그동안 부지런히 밥을 해 먹은 영광이며, 모서리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아이의 책상과 의자는 학생으로서 열심히 노력한 증거입니다.

집안 구석 구석마다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사연이 없는 곳이 없는 우리 집은 오늘도 우리 가족의 삶을 오롯이 기억하며 세월에 묻혀갑니다.

 

《언덕 너머 집》 본문 이미지. (이미지=비룡소 제공)
《언덕 너머 집》 본문 이미지. (이미지=비룡소 제공)

여기 언덕 너머 시냇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이 끝나는 곳에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열두 명의 아이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집입니다.

감자를 깎아 문양을 만들고 물감을 묻혀 찍은 벽에 비가 새서 얼룩이 진 벽지, 서로에게 물려주며 사용한 침대와 장난감들, 열두 명의 아이들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던 낡은 초록색 계단과 비밀 이야기를 주고받던 방은 아이들의 성장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함께 양탄자를 청소하고 저녁 준비하는 엄마를 돕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스칩니다. 하루에 두 번씩 우유를 짜러 들리던 축사에 가득한 젖소를 돌보고 축사를 청소하고 소에게 먹일 건초를 쌓던 아이들은 어릴 때의 이 평화롭던 일상의 기억 덕분에 힘을 내서 잘 지내겠지요.

늘 반복되어 찾아오는 계절은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며 열두 명의 아이들은 뒤엉켜 자랍니다. 어느덧 훌쩍 어른이 된 아이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나둘씩 집을 떠났습니다.

《언덕 너머 집》 본문 이미지. (이미지=비룡소 제공)
《언덕 너머 집》 본문 이미지. (이미지=비룡소 제공)

이제는 아무도 남지 않은 집은 아이들의 추억을 간직한 채 쓸쓸히 외로움을 견뎌냅니다. 낡은 집은 지나가던 너구리가 먹을 걸 찾아 들릴 때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고, 호두를 숨겨둘 장소가 필요한 다람쥐를 위해 오르간을 내어줍니다. 제비에게는 집 지을 모서리를 빌려주고, 겨울잠을 잘 곳이 필요한 곰에게는 지하실을 열어주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작가는 풀숲에 숨어 있던 이 집을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곧 무너질 듯한 낡은 집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모았습니다. 벽지 조각, 비에 젖은 책, 귀퉁이가 찢어진 지도, 진흙이 묻은 드레스, 구겨진 손수건, 조개껍데기로 만든 단추 등을 말이에요.

아이들의 추억을 간직한 그 물건들은 작가의 손에 의해 그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어놓습니다. 바로 방금 읽은 이 책 속 가족의 이야기이죠. 그 집에서 태어난 열두 명의 아이들이 먹고 놀고 웃으며 어른으로 잘 자랐다고요. 마음속에는 행복을 가득 간직한 채로요.

《언덕 너머 집》 본문 이미지. (이미지=비룡소 제공)
《언덕 너머 집》 본문 이미지. (이미지=비룡소 제공)

가끔은 와 볼 법도 한데 왜 집이 버려졌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살다가 아이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 한 번씩 와서 그리운 냄새도 맡아보고, 하룻밤 좁고 불편한 집에서 자고 나면 세상을 헤쳐나갈 힘도 날 텐데, 그 몫은 작가가 독자의 상상으로 남겨 두었나 봅니다. 추억을 간직한 집은 아이들에게 있어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따스한 안식처라는 걸요.

 

우리 집은 우리 가족에 대해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을까요. 참을 수 없는 더위가 찾아왔을 때는 다 같이 거실에 이불을 펴고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며 얼음주머니를 하나씩 끼고 잤던 일을 기억할 거예요. 먼 곳으로 공부하러 가느라 한동안 비워졌던 아이 방은 방 주인을 그리워했을 테고요. 삼겹살이 먹고 싶은데 냄새 때문에 망설일 때 선뜻 내어준 뒷베란다는 그날 우리가 얼마나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었는지 알아서 마음이 흐뭇했을 거예요.

시간이 더 지나 우리 가족이 다른 곳으로 떠나도 집은 우리를 기억하겠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잘 지낸 한 가족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 언덕 너머 집처럼 세상 많은 집에 사랑과 웃음이 흘러넘치는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긴 장마에 비 새는 곳 없이 잘 견뎌내는지 또 다른 가족인 우리 집을 살펴보러 가야겠습니다.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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