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다] 유령과 친구 되어볼까? 《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
[그림책을 보다] 유령과 친구 되어볼까? 《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
  • 김정아 기자
  • 승인 2022.10.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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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신수진 옮김, 비룡소, 2022년 6월 (사진=비룡소 제공)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신수진 옮김, 비룡소, 2022년 6월 (사진=비룡소 제공)

어릴 적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과 입술이 퍼런 저승사자가 나오면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무서움을 참으며 실눈을 뜨고 보았어요. 소풍만 가려면 비가 와서 학교에 몇십 년째 살고 있다는 귀신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현실 세계로 끌고 나온다는 것이 오싹하기도 했지만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 유령이 우리 집에는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집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유령이라니 무척 기대됩니다. 아주아주 오래된 집에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살고 있습니다. 소녀는 오랜만에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며 책을 넘기는 독자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좀 도와달라고 해요. 이 집에 유령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같이 찾아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소녀는 유령에 대해 잘 모르는 나를 위해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희뿌옇고 얼굴에 눈 대신 구멍이 두 개 있다고요. 어떤 유령은 사슬을 칭칭 두르고 나타나서 분명 철커덩거리는 소리가 날 텐데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대요. 유령은 불 꺼진 방에만 들어가고 한밤중에만 밖으로 나온다는데 다락, 벽장, 침대 밑까지 구석구석 다 찾아보았지만 아직 못 만났다면서 이러다가는 영영 못 보고 말 거라며 난감해합니다.

(사진=비룡소 제공)
(사진=비룡소 제공)

이 집에는 진짜로 유령이 살고있는 걸까요? 소녀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 계단 위에서 빼꼼히 얼굴을 든 유령이 독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요. 소녀가 가는 곳에는 모두 유령이 따라다니며 우리가 여기 있는데 왜 못 찾지? 하며 숨바꼭질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소녀에게 들키면 안 되니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들어 쉿! 하는 입 모양을 하고 있네요.

웃음을 참으려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유령도 있고, 코앞에 있는 유령을 못 보고 찾아 헤매는 소녀가 재미있다는 듯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유령도 있어요. 심지어 독자에게 소녀에게는 보여주지 않던 미소를 보여주는 유령도 있어요.

작가는 책이라는 물성을 이용해 반투명 종이에 유령을 그려 책장을 넘기면 유령이 나타나게 책을 만들었습니다. 독자는 유령이 어디 있는지 알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소녀를 따라 집안을 돌아다니며 같이 유령을 찾는 척하는 게 더 재미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해요. 사람이 살고있는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한 집은 오랫동안 비워져있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큰 집에 소녀 혼자서 살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요. 소녀는 왜 이 집에서 혼자 사는 걸까요? 살긴 사는 걸까요?

(사진=비룡소 제공)
(사진=비룡소 제공)

마지막 그림을 자세히 보니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가 보입니다. 소녀와 똑같은 줄무늬 옷을 입었습니다. 이 대저택의 주인일까요? 다시 소녀의 그림을 자세히 보니 소녀의 피부가 놀랍게도 초록색이에요. 게다가 소녀가 투명하게 그려진 부분도 있어요. 아하, 이 집에 살고 있다는 유령이 누군지 알겠어요. 뒤 면지에 잔뜩 그려진 유령 중 하나가 소녀를 보고 깜짝 놀라 찻잔을 떨어뜨렸습니다. 소녀가 말한 대로 이 집에 유령이 살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어요!

소녀와 유령의 숨바꼭질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의 숨바꼭질입니다. 게다가 유령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니 더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독자를 깜빡 속이는 유령이라니, 어서 친구로 삼아 다가오는 핼러윈 데이에 신나게 놀고 싶습니다.

우리 문화가 아니라서 핼러윈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도 책으로 만나는 귀엽고 깜찍한 유령과는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18세기에 지어진 대저택에 사는 친구가 오후 내내 같이 놀자고 초대장을 보냈으니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같이 유령과 친구가 되러 가볼까요?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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