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원장의 우울증 특강]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 극복하려면
[김영화 원장의 우울증 특강]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 극복하려면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9.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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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
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

트라우마는 과거에 경험한 심리적으로 충격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개인의 정서와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모로코의 강진 발생과 리비아의 대홍수처럼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를 겪은 후 이웃과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강한 공포심과 불안은 트라우마가 되어 정신적 외상으로 남게 된다. 이런 정신적 외상들은 예측할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또한 회피할 수도 없다.

전쟁을 겪은 군인들이나 개인적인 자동차 사고, 폭력, 학대 등의 사건을 겪은 후에도 트라우마가 남기도 한다. 이런 사건, 사고를 직접 겪은 사람들뿐 아니라 이를 목격하거나 사고당한 사람들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도 우울증과 불안증,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게 된다.

A씨는 15년 전 군에 간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슴에 묻은 아들을 하늘에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주변에서 누군가 가까운 가족을 잃었다는 얘기만 들어도 피눈물 흘렸던 당시의 상처가 되살아나 가슴이 조여 온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 때문이다.

故 박완서 작가도 젊은 나이의 아들과 사별한 후 겪은 처참함과 비통함을 ‘한 말씀만 하소서’란 자서전적 에세이에서 보여주고 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느님, 사랑하는 아이로 점지한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더도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절규하면서 아들과의 사별이란 트라우마를 세월이 흐르면서 극복하는 과정을 글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트라우마란 어떤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급격하게 불안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흔히 외상 후 스트레스(PTSD)라고도 불린다.

트라우마란 그저 잠깐의 충격이 아니다. 트라우마를 당한 사람 10명 중 1명은 평생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오랜 기간 지속되면 우울증 등 정신장애가 동반되고, 심한 경우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PTSD의 경우 10년이 지난 후에도 약 40%에서 질병이 계속 관찰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지만 그중에서도 이겨내기 힘든 스트레스 상황은 트라우마가 되어 남게 된다. 가장 큰 스트레스를 지수로 나타내어 100이라고 할 때 배우자의 죽음이 100으로 가장 높다. 이후 이혼, 별거, 감옥살이하는 것, 가까운 가족의 죽음, 본인의 상해 또는 질병 순으로 나타난다. 한국에서 스트레스 지수 검사를 했더니 가장 높은 것은 자식의 죽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인들은 남편보다는 자식과 더 깊은 정서적인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여성운동으로 알려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트라우마는 198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실제 진단으로 인정됐다.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후 참전 군인들이 겪는 정신적 상처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미국 사회는 외상 후 스트레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제 진단으로 인정받기까지 1970년대 중반 미국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이 뒷받침됐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트라우마가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성생활과 가정생활에 더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을 통해서다. 여성과 아동에 대한 지속적인 학대가 모든 문화에서 은밀하게 있어 왔지만, 이것이 기본인권 침해이며 동시에 범죄라는 것이 인정된 것은 겨우 수십 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일반 여성들과 아이들이 가정에서 겪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으로 인해 나타나는 심리적 증후군은 전쟁 생존자들에게 나타나는 증후군과 같다고 한다.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쥬디스 허먼은 저서 ‘트라우마’에서 아동학대 피해 아동이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베트남 참전 군인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는 어린 시절 당한 학대가 원인이 되어 어른이 되면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의료원 정신의학교실에서 어릴 적 정신적 충격(트라우마)을 경험한 사람이 성인이 된 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어린 시절 사고나 폭행, 방임, 성적 학대를 겪은 경우 성인기에 우울증 발병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8~10배 정도 높다는 연구결과는 있었지만 이에 대한 생리학적 원리에 대해 최초로 밝힌 것이다.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을 겪는 것은 어린 시절 성적인 학대를 당한 경우가 가장 심하다. 그다음으로 지속적인 폭행과 심한 교통사고와 같이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의 사고를 당한 경우, 그리고 폭언이나 방임과 같은 정서적 학대 순으로 우울증을 겪게 될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만약 우울증이 치료가 잘되지 않거나 치료된 후에도 재발한다면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또 어린 시절에 겪은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가 원인이 되어 심각한 성인우울증이 나타나는 만큼 아이들이 겪는 힘든 경험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지 낳도록 부모와 주위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각종 사건 사고는 우리 앞에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나 자연재해, 교통사고, 전쟁, 테러, 범죄 등 각종 사고를 겪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불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때 겪게 되는 슬픔, 분노, 절망감을 감춰선 안 된다. 안전한 곳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그리고 6개월 정도의 애도 기간을 보낸 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슬픔이 길어지면 더 깊은 마음의 병이 되기 때문이다.

쥬디스 허먼은 “생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상해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지만, 회복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며, “역설적이게도 상처를 직시하고 세상을 향해 분명하게 말하며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으로 시작된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치유법이다”라고 했다.

사람의 악한 본성이나 자연재해가 사라지지 않는 한 트라우마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였던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들어서면 ‘과거를 잊은 자는 과거를 반복할 운명에 놓여있다’는 죠지 산타야나의 경구가 보인다. 트라우마도 마찬가지다.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트라우마 치유의 첫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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