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다] 외로운 모든 이들에게 평안함을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그림책을 보다] 외로운 모든 이들에게 평안함을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8.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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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비스 글, 쥘리에트 라그랑주 그림, 김윤진 옮김, 책읽는곰, 2023년 7월.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나탈리 비스 글, 쥘리에트 라그랑주 그림, 김윤진 옮김, 책읽는곰, 2023년 7월.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여행 중 체코 남보헤미아주의 체스키 크롬로프에 들렀습니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500년이 넘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해 동화에 나오는 중세 유럽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인 체스키크룸로프성이 있는데, 성을 둘러싼 해자에는 곰이 살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부터 성을 지키기 위해 곰이 있었다고 해요. 원래 살던 곰이 죽자 사람들이 다시 어린 곰을 데려다 놓았는데, 흙이 아닌 시멘트 바닥과 깨끗해 보이지 않는 웅덩이가 있는 좁은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버린 성을 더이상 지켜야 할 이유가 없는데 굳이 곰이 있어야 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의 구경거리가 되어 땡볕 아래 맴도는 곰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곰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곰이 얼마나 지치고 외로울까 싶어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곰이 조금은 평안해지기를 기도하면서요.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본문 이미지.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본문 이미지.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앙리 할아버지는 버스 정류장에 하염없이 앉아 있습니다. 아니, 살고 있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하겠네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그 자리에서 종일 끝없이 되풀이되는 버스의 브레이크 소리와 바쁘게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맞춰 삽니다. 그 누구도 버스 정류장의 할아버지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아기 코끼리 한 마리가 버스 정류장을 찾아와 할아버지 곁에 앉았습니다. 버스 정류장을 찾아오는 이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떠나는데 아기 코끼리는 고민이 있는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무슨 고민일까요. 날은 어두워졌지만 아기 코끼리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본문 이미지.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본문 이미지.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할아버지는 아기 코끼리가 길을 잃은 건 아닌지 가족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되어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 부자 동네를 다니며 물어보지만 사람들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아기 코끼리는 서커스 천막의 지붕과 동물원의 철창을 보자마자 그쪽으로는 가지 않으려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버스 정류장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로 둘은 함께 지내기로 합니다.

코끼리와 함께 지낸다고 앙리 할아버지의 삶은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홀로 보내는 밤보다는 덜 추웠고, 기다림의 시간은 덜 지루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외로움이 사라진 거였지요.

또 한차례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땅이 흔들리며 어마어마한 코끼리 떼가 버스 정류장으로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아기 코끼리를 찾는 가족이란 걸 알아채고는 작별 인사를 건네려 하는데 아기 코끼리가 할아버지를 감싸더니 같이 버스 정류장을 떠났습니다. 이제 할아버지에게는 외롭지 않게 새 가족이 생긴 거예요.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본문 이미지.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낯설지 않습니다. 외롭게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많이 겹쳐 보였거든요. 그런 할아버지에게 나타난 아기 코끼리는 할아버지를 움직이게 만들고 시무룩한 얼굴을 활기차게 변화시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벗어나 아기 코끼리에게 뭐라도 해주려고 이곳저곳을 다닌 할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자신은 비록 초라하게 버스 정류장에 있지만 아기 코끼리만은 안전하고 따뜻한 곳으로 돌려보내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 마음이 코끼리 가족에게까지 전해져 할아버지에게도 진짜 가족이 생겨 모두가 평안해졌습니다. 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이젠 더이상 외롭지 않다며 함께 있는 마지막 그림이 참 좋습니다.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인 합스부르크 가의 황후인 마리아 테리지아의 이름을 딴 체스키크룸로프성의 곰은 어떻게 하면 평안해질까요. 멋진 이름도 좋지만 원래 그들이 살던 세계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누구나 알고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외로운 곰을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무언가 필요한 때입니다. 앙리 할아버지의 마음처럼 우리의 따뜻한 마음이 조금만 모인다면 분명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말이죠.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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