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다]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거짓말이 뿡뿡, 고무장갑!》
[그림책을 보다]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거짓말이 뿡뿡, 고무장갑!》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4.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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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화 글·그림, 책읽는곰 출판, 2023년 4월.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유설화 글·그림, 책읽는곰 출판, 2023년 4월.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여기는 말썽꾸러기 쌍둥이 장갑이랑 겁은 많지만 누구보다 용감한 비닐장갑과 새침데기 레이스 장갑, 무엇이든 계산하는 목장갑, 먹보 주방 장갑, 씩씩한 야구장갑, 태평한 때밀이 장갑, 셜록 홈즈 닮은 가죽 장갑, 힘센 권투 장갑, 모범생 고무장갑이 다니는 장갑 초등학교입니다.

오늘은 식목일이라서 화분에 씨앗을 심기로 했습니다. 고무장갑은 모범생답게 누구보다도 정성껏 씨앗을 심고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놓아두었습니다. 일주일쯤 지나자 다른 친구들 화분에서는 다 싹이 나는데 고무장갑과 때밀이 장갑 화분은 아직 싹이 나지 않아요.

학교에 제일 일찍 온 고무장갑은 화분에 물을 주려다가 싹이 난 걸 보았어요. 그런데 고무장갑 화분이 아니라 때밀이 장갑 화분에 싹이 났네요. 속상한 마음에 고무장갑은 그만 두 화분에 붙은 이름표를 떼어 바꿔 붙입니다.

《거짓말이 뿡뿡, 고무장갑!》 본문.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거짓말이 뿡뿡, 고무장갑!》 본문.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친구들의 축하를 받은 고무장갑은 우쭐한 마음에 한껏 들떴는데 명탐정 가죽 장갑이 이름표 구석이 떼어진 걸 발견하고는 수상쩍다고 하자 버럭 화부터 냅니다. 또 고무장갑이 심은 씨앗은 가지 씨인데 올라온 새싹은 오이라는 친구들 말에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이 심은 씨앗은 오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한 번 하기 시작한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고 친구들의 말을 비꼬아 듣고 쏘아붙이니 고무장갑은 배가 아프기 시작해요. 터지기 직전까지 불어난 고무장갑은 마음을 바꿔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하기로 합니다.

그러자 담아 두었던 말을 할 때마다 방귀가 뿡뿡 나와요. 솔직히 말하고 나니 얼마나 몸과 마음이 가볍던지 고무장갑은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탐스러운 열매가 열렸답니다.

《거짓말이 뿡뿡, 고무장갑!》 본문.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거짓말이 뿡뿡, 고무장갑!》 본문.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놓는 고무장갑 뒤에 보이는 <욕심은 그만, 레이스 장갑!> 책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고무장갑이 씨앗에게 읽어 주는 <잭과 콩나무> 책에서는 고무장갑의 마음이 엿보이고, 고무장갑이 거짓말을 해서 배가 아플 때 바로 뒤 책상에 놓인 <용기를 내, 쌍둥이 장갑!> 책은 잘못을 고백할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처럼 보입니다. 고무장갑이 거짓말을 하고 화를 내자 레이스 장갑이 가져온 <피노키오> 책은 이 그림책의 백미로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려줍니다.

고무장갑은 누구보다 열심히 화분을 돌봤는데 싹이 나오지 않자 무척 속상했을 거예요. 때로는 싹이 나오지 않는 씨앗도 있어서 조금 더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고무장갑이 화분의 이름표를 바꿔 놓는 장면에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고무장갑은 왜 이름표를 바꿔 붙였을까요. 뭐든지 열심히 하는 고무장갑은 씨앗을 잘 키워서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마음과 달리 씨앗이 싹이 트지 않자 속상한 마음이 너무 커서 그랬나 봐요.

《거짓말이 뿡뿡, 고무장갑!》 본문. (이미지=책읽는곰 제공)

살다 보면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 있어요, 물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지요. 거짓말을 하게 되면 마음이 어떤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고무장갑을 통해 잘 보여줍니다.

거짓말 때문에 제일 괴로운 사람은 거짓말을 한 자신입니다. 내 마음이 편하고 부끄럽지 않아야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있거든요.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이 매우 중요해요. 고무장갑의 마음을 변화시킨 건 친구들이었어요.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요.

가벼워진 몸으로 하늘을 나는 고무장갑의 모습은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것 같았습니다.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고무장갑이 열심히 했다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거든요.

초등학교 교실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풍경 속 장갑 친구들 덕분에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게 되니, 그림책은 참 좋습니다.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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