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박경민 칼럼] 아무튼 출근
[보건교사 박경민 칼럼] 아무튼 출근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10.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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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중학교 보건교사 박경민
문창중학교 보건교사 박경민

‘삐삐삐 빅- 삐삐삐 빅-’ 작년부터 나의 아침 알람은 30분이나 빨라졌고, 아침 커피 한 잔의 소확행을 누릴 여유도 없어졌다.

외출할 땐 핸드폰, 지갑과 함께 마스크가 필수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코와 입을 못 본 지 꽤 오래된 거 같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전화 통화나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부쩍 줄었으며, ‘코’자로 시작하는 단어로 끝말잇기를 하자면 이젠 코끼리보다도 ‘코로나’가 먼저 떠오를 거 같다.

지난해 2월 말에만 해도 뉴스에서 어떤 의사가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 믿지 않았는데 요즘은 ‘일상 회복’이라는 말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내 일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18년 차 중학교 보건교사로 근무하며 신종플루도 메르스라는 신종 감염병도 경험해봤지만 작년과 올해만큼 ‘보건교사’라는 직업적 책임감과 업무 과중이 이렇게 심했나 하고 느낀 적은 처음이다. 지난 2년 동안 스트레스 탓인지 노화 탓인지 흰 머리도 뱃살도 부쩍 늘고 위염으로 고생하는 날들도 여러 날이 되었다.

선별진료소와 보건소, 병원 등에서 매일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며 피땀 흘리고 고생하는 의료진들만큼은 아니지만 전국의 모든 보건교사처럼 나 또한 퇴근 후, 주말도 없이 매일 긴장감 속에 학교 방역 활동의 최전선에서 컨트롤타워 역할과 학생들의 건강관리 및 보건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등교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고 있을 때 나를 비롯한 전국의 보건교사들은 마스크, 손 소독제, 비접촉 체온계 등 방역물품을 확보하느라 애썼다.

또 학생들의 거리두기 실천을 지도하고자 교문부터 중앙현관에 이르기까지 보도블록에 1m 간격으로 색칠도 하고 학교 곳곳에 개인방역수칙 안내문을 만들어 부착하며 없는 미술 실력까지 한껏 뽐내보기도 했고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느라 원치 않는 운동도 해야 했다.

더욱이 나를 ‘문창중학교 질병관리청장’이라 부르며 믿고 의지하는 여러 선생님과 학생들을 위해 수시로 변화하는 코로나19 방역지침과 관련 자료들을 끊임없이 찾아 익히고 적용해보며 주변 학교 동료 보건교사들과 공유하고, 각자의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를 쓰고 지켜온 시간이 벌써 2년째다.

(이렇게 학기 중에 학교 방역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고생하고 지난 겨울방학과 여름방학마저 지체없이 전국 선별진료소에 봉사활동 하러 갔었던 동료 보건교사들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매일 아침 7시 40분, 학교에 도착해 보건실과 관찰실 환기를 시작으로 학생 및 교직원 건강상태 자가진단을 모니터하고 1차 유증상 명단을 확인한 후 8시부터 8시 30분까지 중앙현관에서 교감, 부장교사, 방역인력과 함께 학생들의 발열 여부 확인과 건강상태를 모니터한다.

8시 30분부터 50분까지는 등교한 학년의 각 반을 돌며 유증상 학생 명단과 결석생을 파악하고 담임교사의 협조로 수업 전 두통, 목 아픔, 콧물, 기침 등 코로나19 증상이 있는 학생은 없는지, 가족 중 선별검사 중인 사람이나 격리자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해당 학생은 바로 가정에 연락해 귀가 또는 선별진료소로 안내한다.

이렇게 1분도 빈틈없이 빡빡하게 시간을 보내고 보면 어느새 9시 20분이다. 커피 한 잔을 겨우 손에 들고 어제 결석한 학생들의 검사 결과와 당일 결석생 현황을 파악한 후 카톡으로 인근 지역 보건교사들과 학교 코로나19 현황을 공유하고 나면 1교시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매시간 수업 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르르 보건실로 몰려오는 학생들을 차례차례 만나 통상 건강문제나 종종 병원 가기 전 응급처치 등 학생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틈틈이 전자문서 공문도 처리하고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하다 보면 금방 11시 30분이다.

당뇨 학생 인슐린 준비를 하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또 한 번 보건실이 북새통이 되는 점심시간을 보내고 한숨 돌리고 나면 교육청에 코로나19 현황을 보고해야 할 오후 2시다. 전자문서 공문을 다시 확인해서 처리하고 시간을 쪼개어 보건교육 자료에, 가정통신문도 만들고 동아리 활동과 주제선택 프로그램 수업 준비도 해야 한다.

오후 4시, 당일 코로나19 증상이 있거나 아파서 조퇴한 학생 및 학부모와 전화 통화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교내 확진자 발생 소식이 있는 날에는 사실상 모든 일을 중단하고 교내 역학조사에, 보건소와의 전화 통화에, 지역교육청에 보낼 공문처리에, 학부모들의 민원전화에까지 시달리며 전쟁 같은 2~3일을 보내야 한다.

이렇듯 일터에서의 내 일상이 긴장과 바쁨의 연속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눈초리만 남게 됐다. 사실 학생들은 나의 밝은 미소를, 유머러스한 나의 말재간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런 내 매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우울하기까지 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학생들에게 “제 동생 입학 때까지 전근 가지 마세요” “선생님이 계셔서 보건실이 우리 학교 핫플레이스예요” “그냥 지금처럼 그 자리에 계셔만 주세요” “선생님은 말도 빠르시지만 손도 엄청 빠르세요” 같은 학생들의 피드백을 종종 받던 나였는데….

지금은 “마스크 똑바로 써라. 손 소독해라. 거리두기 해라. 물 나눠 마시지 마라” 등 방역수칙 관련 잔소리를 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1인자가 됐다. 아마 교내 전화 최다 이용자, 학교 문자 발송 서비스 최다 이용자, 학교 방송교육 최다 이용자 타이틀도 내 차지일 것이다. (그나마 전교생의 이름을 거의 외우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남아있어서 학생들과의 친밀감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11월 ‘위드 코로나’를 앞두고 우리에게 2020년과 2021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너나 할 것 없이 지치고 치열하게 견뎌온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눈을 자주 보고 경청하는 경험의 시간이었기를, 우리가 건강공동체였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기를, 여행이 인생에 큰 활력소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또한 기후변화와 건강 문제가 나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학교가 매일 오고 싶은 곳이었다는 깨달음을, 의료현장에서 고생하는 수많은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이었다는 것도 함께 기억되기를 바란다.

일상 회복이라는 소중한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이 꼭 찾아오기를 오늘도 간절히 소망하며 아무튼 오늘도 퇴근해 본다.

<박경민 보건교사 프로필>
- 現 문창중학교 보건교사 
- 現 전국보건교사회 홍보이사
- 2003년 서울 중등 보건과 수석합격
- ㈜동화사 중학교 보건교과서 공동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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