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음악육아] "세상의 모든 엄마는 예술가다"
[김연수의 음악육아] "세상의 모든 엄마는 예술가다"
  • 지태섭 기자
  • 승인 2021.05.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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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대학축전 서곡’ Academic Festive Overture op.80
대학생처럼, 싱그럽게.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김연수 작가 겸 미라클 베드타임 대표

세상에 우리 아이와 동일한 아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를 낳아서 키우는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예술 작품을 다듬는 귀한 손길임이 틀림없다. 

엄마라는 이름은 내가 낳은 아이 덕분에 얻은 귀한 이름이다. 정겹고 따뜻하지만, 가까이 들어가 보면 그 이름만큼 매일매일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아이와의 시간은 돌아보면 소중하고 그리운데, 왜 그 순간에는 엄마로서의 삶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할까? 

특히나 요즘 엄마의 삶은 더 힘들다. 코로나19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이들의 온라인 학습까지 챙겨야 하니, 엄마의 역할은 무한대로 늘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엄마들을 위로하는 음악으로 달콤한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파 작곡가의 세레나데도 고민했지만 이내 방향을 바꿨다. 때론 사랑도 힘드니까. 

대신 낭만파 작곡가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Academic Festive Overture) op.80’을 선택했다. 새로운 시작을 선포하고 싶었다. 출산과 육아 이후에 더욱 성숙한 성인으로 다듬어지고 거듭날 엄마들의 진짜 인생에 대한 선포. 

이 곡은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가 독일의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이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1880년에 작곡한 곡이다. 브람스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묵직한 독일 전통 작곡기법을 준수하던 작곡가였지만, 이 곡만은 평소보다 밝고 위트가 넘치는 순간들을 담았다.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곡 중간중간 익숙한 선율이 들릴 것이다. 귀를 열고 잘 들어보자. 숨은그림찾기 하듯, 음악 속에서 아는 선율을 찾아보자. 삽입되어 있는 곡 중 하나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어여쁜 장미 참 아름답다~”라는 독일민요다. 다시 듣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을 떠올리며 따라 부르고 있을 수도 있다. 

공연장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수동적으로 연주자를 바라볼 때가 아니라, 공연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다. 요즘 아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떼창’은 관객을 무아지경에 빠뜨리기도 하는데, 140년 전 이 곡이 초연되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자극적인 환경이 없었을 당시, 오케스트라 공연을 듣다가 평소 알던 멜로디가 나왔을 때 환호했을 젊은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들의 모습만 상상하지 말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야광봉 들고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환호했던 우리의 젊은 시절도 함께 기억하며 잠시라도 행복한 추억에 젖어보면 좋겠다.

곡의 주제가 바뀔 때마다 어떤 장면이 연상되는가? 초록의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서 청춘을 노래하던 그 시절을 상상하며 들어보길 바란다. 

수많은 작곡가 중에 브람스를 택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필자는 대학원 졸업 논문으로 낭만시대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을 분석했는데, 남성 작곡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여성 작곡가들이 클래식 음악계에 큰 획을 그은 남성 작곡가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였다. 

대표 여성 작곡가는 바로 로버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의 관계에 깊이 감동했다.

브람스가 스무 살 되던 해에 슈만 부부와 인연이 시작됐다. 슈만은 브람스와의 만남 이후 무명이던 브람스에 관한 기사를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에 실어주고 신예 작곡가로서의 가능성을 대단히 높이 평가해주곤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슈만은 정신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클라라는 그 당시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남은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연주와 작곡 활동을 병행했던 그녀의 삶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그녀를 브람스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머뭇거리면서도 선배 작곡가 부인에 대한 예의와 존중, 연민과 우정을 유지하며 40년간 클라라 곁을 지켰다. 결혼이란 제도권 안에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작품 활동을 응원하며 정신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대학축전 서곡’은 관현악 버전과 피아노 버전으로 출판됐는데 피아노 버전은 클라라의 생일에 헌정했다. 브람스가 명예박사로 추대받던 날, 자신의 생에 깃든 가슴 벅찬 순간을 클라라의 이름과 함께 기억하고자 했던 그의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곡에 얽힌 브람스의 인간적인 면을 기억하고 싶다. 브람스는 독일의 브레슬라우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제안받기 이전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하곤 한다. 하나는 그가 배를 타고 독일에서 영국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언어의 문제로 영어권 나라에 가는 사실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브람스는 영어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말하는 것은 편안하지 않았다고 한다. 설사 배를 타고 영국에 갔다 해도 영국 문화계 인사들과의 대화는 필연적이다. 그 만남이 부담스러워서 케임브리지 대학의 제안은 거절하고 3년 뒤 독일 브레슬라우 대학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설이 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세기를 넘어 사랑받는 위대한 작곡가도 결국 우리와 비슷하다니. 곡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니 마치 브람스가 ‘두려움은 당신만의 서글픈 감정이 아니라고, 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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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고 싶을 때,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을 들어보면 어떨까? 빛나던 당신의 20대를 추억하며 다시 꿈꾸길 바란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이 있어서 지금 아쉽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과거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10년 뒤에 무엇을 후회하고 있을지 떠올려보고 그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보는 것이다. 아주 작게 그리고 꾸준히. 

<김연수 작가 약력>

- 시드니 대학교 피아노 연주과 학사, 석사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졸업
- 前 동서울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 現 미라클 베드타임 대표
- 저서: ▲미라클 베드타임 ▲9시 취침의 기적 ▲악기보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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