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의 문화산책]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춘희’
[슈가의 문화산책]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춘희’
  • 온라인팀
  • 승인 2015.05.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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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지숙 음악평론가

 

나의 생애 첫 오페라는 음악실 TV 속 한 테이프였다. 여러 거장의 공연을 녹화한 테이프를 음악 선생님께서 틀어주시곤 했다.

오페라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10대의 우리들은 푸치니의 ‘라보엠’, 베르디의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 등의 대단한 공연을 엎드려 감상하거나 졸기 일쑤였고 핸드폰을 만지며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수차례 아이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무척이나 고생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선생님의 마음이 다른 음악가들에게도 동일하게 생겨나는 마음일까 궁금케 하는 공연이 있어 소개한다.

‘간결, 섬세, 열정’ 3가지로 함축된 공연 인상적

소프라노 유미자 교수가 단장으로 있는 아르트예술단에서 주관해 지난 15일 구로구민회관에서 공연된 ‘라 트라비아타-춘희’의 키포인트는 크게 ‘간결, 섬세, 열정’ 3가지로 함축할 수 있다.

등장인물 3명, 피아노 1명
, 러닝타임 1시간 내외라는 상상도 못할 구성에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압축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느껴졌다.

주인공인 비올레타와 그의 연인 알프레도, 두 연인의 헤어짐에 기여하는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 이 세 명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감에도 큰 흐름을 헤치지 않으며 적절한 기승전결이 있도록 장치했다.

모든 악기를 배제하고 피아노 반주에 노래하는 것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각각의 막에 앞서 피아노 서곡에 맞추어 줄거리를 스크린에 띄움으로써 서곡의 역할을 돋보이게 했으며 피아니스트의 연주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했다.

1막에서 두 연인의 듀엣, 2막에서 제르몽으로 인한 헤어짐, 3막에서 비올레타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사건만으로 정제된 공연이 청소년은 물론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사람에게도 지루하지 않게 다가서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무대장치 돋보여

다소 제약적인 무대와 간소화된 무대소품들로 인해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는 공연이었음에도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하기 위해 한 장치들이 엿보인다. 특히 2막에서 제르몽이 알프레도를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고향 땅의 풍경을 노래로 묘사할 때 가사의 흐름에 맞게 산과 들의 이미지를 띄워 곡에서 전달되는 심상을 놓치지 않게끔 유도했다.

이밖에도 배우들이 객석 아래로 내려온 것도 특별한 의도를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 피아노 서곡이 끝난 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와인 잔을 들고 내려와 객석에 섞여 관객과 눈을 맞추며 건배를 청했다. 이 연출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느낌에 더하여 관객들이 비올레타의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로 보이게끔 하는 착각을 일으켜 공연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는 흥미요소가 되었다.

열악한 무대시설에도 혼신 다하는 공연 ‘감동적’

앞서의 구성과 연출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선공연이라고 적당히 하지 않는 모습, 오히려 더욱 열과 성을 다하는 목소리에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공연장을 울리는 연기가 감동의 잔물결로 남는다.

더욱이 초청된 학생들이 많았기에 두런두런한 학생들의 목소리와 함께 예외없이 어디서나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흐름을 방해했을 수도 있는데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듯 혼신을 다하는 것에서 더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또한, 작은 공간인 덕분에 맨 뒤에 앉아서도 손짓하나 표정하나까지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 장점으로 여겨졌다. 오페라 전용 홀의 좌석 중에는 아파트 창문 너머로 공연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객석이 있어 배우들의 얼굴을 보기 힘든 것은 물론 정수리만 구경하고 오는 기분이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 소프라노 유미자 교수가 지난 15일 서울 구로구민회관에서 열연한 '라 트라비아타-춘희' 콘서트 오페라 포스터.

 


찾아가는 오페라 더 확산되는 계기 되기를

오페라는 단순히 성악기술로만 관객을 매료시키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배우들의 표정을 통해, 감정을 담은 기술을 통해 펼쳐져 온 몸을 사로잡는 공연이다. 오페라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경우 이 모든 것을 빠트리지 않고 다 맛보기란 쉽지 않다.

2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과 이름도 어려운 많은 등장인물, 그 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이탈리아어로 감상하면 어느 순간 흐름을 놓치기도 한다. 거기에 줄거리까지 모른다면 흥미를 가질 부분은 음악적 요소만이 남으니 절반 이상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오페라를 감상한 관객이 있었다 하더라도 입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공연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선 나의 경험과 같이 영상으로 접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의 공연이 그러하듯 직접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감동이 큰 것 같다.

안타깝게도 공연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니 우리가 찾아갈 수밖에 없어 감동의 혜택은 쉬이 얻어지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비록 구민회관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찾아가는 오페라를 지속적으로 열어 초청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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