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의 문화산책] ‘세 자매’와 차 한 잔을
[슈가의 문화산책] ‘세 자매’와 차 한 잔을
  • 온라인팀
  • 승인 2015.01.2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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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지숙 음악평론가

 

아이들과 연극을 관람하며 은은한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차를 제공하며 음악과 연극, 문학소설이 어우러지는 작품이 최근 공연돼 예술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극단 유쾌한씨어터의 첫 번째 시리즈인 ‘세 자매와 차 한 잔을’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를 각색한 작품이다. 올가, 마샤, 이리나가 주인공이지만 연극의 시작은 무대 한 구석의 카페지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의 주문에 차를 대접하며 두런두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관객들도 차를 마시며 관람하니 여느 카페에 앉아 종업원들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 든다.

마당극과 같이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점, 관객의 연령대가 초등학생부터 중년의 신사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점,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관람하는 등 공연장을 마치 카페처럼 느끼게 하는 분위기이다.

극은 카페지기들의 시선이 ‘세 자매’라는 책으로 옮겨가고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전환된다. 세 자매가 연기하는 내용은 사실 카페지기들이 나누는 대화라는 것이 흥미롭다.

이 연극의 특징은 책의 모든 내용을 각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다음 이야기로의 진행이 카페지기들의 입을 통해 큰 사건을 기준으로 흘러가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주제나 각 인물이 대표하는 성향의 대립구도까지도 카페지기들이 친절히 해석해주니 작품세계가 쉽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세 자매와 그녀들의 올케인 나타샤 간 갈등 상황에서 잘 나타난다. 세 자매는 10여년 전 떠나온 모스크바를 그리워하는 인물로, 지방도시 출신인 나타샤와는 확연히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 극단 유쾌한씨어터의 음악과 연극, 문학소설이 어우러지는 첫 번째 시리즈 작품 ‘세 자매와 차 한 잔을’에 등장하는 인물들. 왼쪽부터 마샤, 올가, 이리나, 나타샤.

 


나타샤는 차림새에서부터 취향마저 세 자매와 딴판이다. 이들의 갈등은 조금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내용이다. 어떤 면에서는 밉상에 호들갑스럽고 촌스러운 나타샤는 작가가 그린 현실적인 인물이다.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나이의 늙은 하녀를 내쫓고 싶어 하지만 시누이들에 막혀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단편적으로는 하녀에 대한 대화이지만 안주인으로서 집안일을 결정할 권한을 시누이들에게 빼앗긴 것에 대한 내면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달리 세 자매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에 붙잡혀 있는 인물들이다. 모스크바에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대사가 이들의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관객들은 제3자이기에 여러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감정적으로 세 자매의 편을 들며 나타샤의 매정한 모습을 지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출자는 안톤 체호프가 카페지기를 통해 말하는 주제의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나타샤를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으로, 세 자매는 현실을 망각한 사람으로 대변한다. 나타샤의 행동은 다소 얄밉지만 그녀의 남편 안드레이가 도박으로 집을 저당잡힌 상황에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해결책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 극단 유쾌한씨어터의 음악과 연극, 문학소설이 어우러지는 첫 번째 시리즈 작품 ‘세 자매와 차 한 잔을’에 등장하는 인물인 올가(오른쪽)와 카페지기들.

 


‘세 자매와 차 한 잔을’ 공연의 또 다른 장점은 라이브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은 극의 분위기나 상황을 표현하는 매개체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어떤 순간엔 음악이 아닌 효과음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그와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러시아 민요 외에도 쇼스타코비치,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선별하였기 때문에 클래식도 겸하여 즐길 수 있다.

클래식 악기인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연주는 물론 아코디언과 기타의 합주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기타의 리듬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는지 마지막 연주에서 삐걱거림은 모니터환경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또한 실제로 라이브카페에서 있을 법한 자연스러운 미학이 아닐까 싶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라면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 유리병전구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다.

카페라는 배경에 어울리게 과일차가 담긴 유리병에 조명을 비춰 무드조명으로 사용한 점은 인상적이다. 다만 유리병을 갖고 있던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무대로 들고 나올 수 있게 하려던 연출자의 의도를 살릴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일상공간에서 관객과 만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쉽지 않은 첫 걸음인 만큼 조금 더 내실을 다진다면 ‘보여주는 책’에서 더 나아가 문학카페라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음악과 문학이 만나 하나의 멋진 연극으로 탄생한 것에 대한 박수와 함께 부모에게는 삶의 철학적 질문을, 아이들에게는 근사한 공연 한 편을 선물하는 시리즈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송지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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