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의 문화산책] 아프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슈가의 문화산책] 아프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 온라인팀
  • 승인 2015.01.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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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숙 음악평론가
송지숙 음악평론가

가뭄에 갈라진 땅과 같이 메마른 이 시대에 용서와 위로를 노래하는 작품이 있어 소개한다.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한 여인의 인생이야기를 풀어낸 ‘여자 이발사’다.

올해 거창국제연극제에서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여자 이발사’는 순수 창작 음악극으로, 라이브 국악 연주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인

어린 딸을 유곽에 팔아버리겠다는 이발사 아버지. 그 이발소를 찾아와 이발사의 어린 딸을 농락하는 손님들. 견딜 수 없었던 소녀는 자기 발로 유곽을 향한다. 그 곳에서 조선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여자는 아버지도 고국도 버리고 사랑을 쫓아 조선으로 건너온다.

‘여자 이발사’의 주인공 에이코는 경쾌한 노래와 함께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버지의 모습도, 주인공 에이코를 버린 조선인 김태수도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의 동작과 시선, 대사에서 그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여배우 3명만이 연기를 하는 것이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이, 미군 장교 등 에이코의 인생에 개입하는 많은 남성들은 무대에 나타나지 않는다. 세 여인이 대화로 풀어가고 있지만 주인공의 주변인들이 마치 무대 위에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연출이 돋보인다.

2명의 배우는 주변인물이 되어 에이코의 인생역정을 대신 들려주거나 다양한 역할을 통해 에이코가 겪었던 삶의 여러 단면을 친절하게 들려준다. 3명의 단짝친구를 게스트로 초대해 근황 얘기를 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에이꼬 한 사람의 인생을 노래하지만 곁에 있는 두 여인이 각각 분하는 역할을 통해 동시대 여성들의 삶이 고달팠음을 시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직후, 한국전쟁 당시 이 땅에 살던 여인들의 인생이 비참함에 가까울 정도로 순탄치 않았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들도 소녀였고, 여인이었으며, 어머니였다.

▲ 순수 창작음악극 ‘여자 이발사’의 주인공 에이코가 질곡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혼자 회상하는 장면.

 


격변기 속 여인들의 처절한 삶 반영

에이꼬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그녀를 도와주던 유일한 여인인 기녀 아마이 마담도 기구한 인생을 풀어낸다.

한국 여자임에도 일본 이름을 써야했고 기녀라는 신분 때문에 이 땅에서 철저히 타인일 수밖에 없었다. 에이꼬에게 지어준 정일해라는 이름이 아마이 마담의 본명이었다는 것을 극의 후반부에서 드러냄으로써 한국여인도 일본여인도 똑같이 고통을 받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물머리 아낙의 회고도 인상적이다. 에이꼬가 일본으로 건너갈 수 없어 머물게 된 전라도의 물머리는 그녀가 독해지고 단단해진 장소이자 무참하게 배척당한 곳이다. 이발소를 열어도 손님이 오지 않고, 논밭을 일궈도 품앗이조차 해주지 않던 땅에서 물머리 아낙들은 ‘쪽바리’라고 욕하며 같은 여자임에도 ‘일본년 살맛’을 운운한다.

노년의 에이꼬가 다시 물머리로 돌아가 여생을 보낸 뒤 물머리 아낙이 그녀를 추억하며 “모질게 굴었다”고 말하는 것에서 일본에 대한 분노가 특정인들에게 분출됐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세월을 반영하며 변화하는 주인공의 의상과 말투는 주변 인물들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에서 막 건너와 아이를 빼앗기기까지는 기모노와 게이샤화장, 일본어가 섞인 어색한 한국어가 그녀가 이방인이며 일본사람인 것을 보여준다.

▲ 올해 거창국제연극제에서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창작 음악극 ‘여자 이발사’ 포스터.

 


아이를 빼앗긴 뒤 아마이 마담으로부터 정일해라는 이름을 받은 뒤로는 50년대 한국여인들의 일상적인 옷을 입고, 한국 욕을 쏟아내고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에서 그녀가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 에이꼬가 질곡으로 점철된 자신의 기나긴 고통의 삶을 물에 떠내려 보내는 노년의 모습에서 애잔함이 전해진다.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똑같은 아픔과 똑같은 고통의 세월을 지냈지만 여인으로서 함께 위로하고 기댈 수 있는 벗이 아닌 타인으로 배척받은 것이 사무쳐있는 것처럼.

“저승은 일본여자도 한국여자도 친구로 지내고 그러는 곳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된 에이꼬의 대사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 송지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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