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다] 여름엔 수박이 제일이지! 《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
[그림책을 보다] 여름엔 수박이 제일이지! 《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5.1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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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글·그림, 웅진주니어 출판, 2023년 5월
이지은 글·그림, 웅진주니어 출판, 2023년 5월

옛날에 팥 할머니가 장에 다녀오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산속에서 길을 잃고 말아요. 그때 할머니 머리 위로 긴 빛이 지나가더니 뭔가 땅에 떨어집니다. 바로 태양 왕 수바입니다.

태양 왕 수바는 원래는 태양을 비춰 하늘나라의 생명을 보살피던 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바의 날개를 탐내던 귀여운 얼굴의 둘 머리 용(머리가 둘 달린 용입니다)이 수바에게 태워달라고 하고선 등에 타자마자 날개를 떼어먹고 무서운 얼굴의 거대한 용으로 변해버립니다. 간신히 땅으로 도망친 수바가 할머니와 마주친 것입니다.

수바는 땅의 신, 바다의 신께 제사를 지내면 날개를 되찾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제사상을 차려 주었지만 기도는 통하지 않았고, 배를 구해 타고 나간 바다에서조차 기도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 본문 이미지. (사진=웅진주니어 제공)
《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 본문 이미지. (사진=웅진주니어 제공)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직접 가마솥을 꽹꽹 두드리며 수바를 잡았으니 데려가라며 둘 머리 용을 부릅니다. 모습을 드러낸 둘 머리 용에게 작은 호리병을 내밀면서 이 안에 수바가 있다며 둘 사이를 반간하여 둘 다 잡는 데 성공합니다.

한입에 둘 머리 용을 꿀꺽한 수바는 날개를 되찾았고 할머니에게 감사하다며 땅에 심으면 보물이 주렁주렁 열리는 선물을 건넵니다. 할머니가 받은 보물을 땅에 심었더니 수바와 똑같이 닮은 것이 열려 수박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혹시 수바인가 싶어 먹기 전에 꼭 두드려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수박 한 통씩 사 간 사람들이 그 많은 씨를 죄다 심어 여름이면 팔도강산이 수박으로 넘쳐나게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수박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 본문 이미지. (사진=웅진주니어 제공)
《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 본문 이미지. (사진=웅진주니어 제공)

자고로 동양의 용이라면 구불구불한 멋진 자태에 긴 수염과 부리부리한 눈매, 날카로운 발톱으로 왕을 상징하는데, 수바는 수영장에서 가지고 노는 동글동글한 비치 볼을 닮았습니다. 심지어 할머니는 처음 본 수바에게 ‘돼지여?’하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줄무늬 초록색 통통한 몸에 짧은 다리와 말린 꼬리는 돼지를 많이 닮긴 했습니다.

그러나 수바의 불꽃무늬 눈썹과 수염은 옛 민화에서 초월적 존재의 신령함을 나타내기 위해 그렸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용의 위엄을 한층 부각시켜 수바가 정말 용이라고 믿게 됩니다. 용의 외양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 고정관념은 깨졌지만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며 평화를 꿈꾸는 수바 왕의 모습은 용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줍니다.

《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 본문 이미지. (사진=웅진주니어 제공)

인정 많고 따뜻하지만 다소 엉뚱한 할머니의 모습은 자꾸만 웃음이 나옵니다. 수바를 끝까지 수박이라고 부르면서도 수바가 원하는 것은 정성을 다해주는 모습이며, 수바의 기도가 잘 듣지 않자 두 팔 걷어붙이고 둘 머리 용을 잡아 가두는 재치에서는 감탄이 나옵니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간절한 기도도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직접 부딪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알려줍니다. 또 용의 보물이라고 주고 간 것이 온 나라에 퍼져 수박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시장을 지나면서도 돈에는 무심한 척 머리에 수박을 이고 가는 모습은 무척 멋지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둘 머리 용은 누굴까요? 몸은 하나에 머리가 둘이라 이리로도 저리로도 가지 못한다며 동정심을 부르지만 실은 제 몸으로 무엇을 하기보다는 두 개의 머리로 남을 속이고 두 배로 욕심을 부려 결국 그 때문에 망하고 마는 사람의 풍자는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수바의 똥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냄새 난다며 인상 쓰며 모습에서는 또 어떤 사고를 치려나 다음 편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수박을 고를 때 잘 익었나 두드리는 것은 모든 생명을 보살피는 태양 왕 수바가 오늘도 우리를 잘 돌보아주고 있으니 시원하게 수박 먹고 건강하게 여름을 잘 보내라고 통통 소리로 화답해 주는 것 같습니다. 시원한 그늘 아래서 달고 맛난 수박 먹을 한여름을 기다려봅니다.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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