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 “더 시급한 것은 호스피스 확충“
조력존엄사? “더 시급한 것은 호스피스 확충“
  • 유경수 기자
  • 승인 2022.08.1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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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생애 말기 돌봄 체계화‘ 국회 토론회 진행
지난 6월 국내 최초 의사조력자살 허용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 발의
의료계·환자단체 “의사조력자살 허용 법률 제정은 주객 전도된 입법“
더불어 민주당 신현영 의원 (사진=유경수 기자)
더불어 민주당 신현영 의원 (사진=유경수 기자)

[베이비타임즈=유경수 기자] 12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이 ‘생애말기 돌봄 체계화’라는 주제로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신현영 의원은 인사말에서 “통계청 사망통계 자료에 따르면 고령층의 의료기관 내 임종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고 토론회 개최 이유를 밝혔다.

이번 토론은 인간의 존엄한 임종을 위한 제도적 개선에 앞서 조력존엄사 입법 추진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생애말기 돌봄 현황과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국민인식, 지역사회 중심의 생애말기 돌봄 과제 등의 의견이 오갔다.

이번 토론에 앞서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국내 최초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의료계와 환자단체에서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안락사 논의보다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태다.

김대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생애말기 돌봄의 현황,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중심으로‘라는 발제를 시작하며, 임종을 맞이하는 생애말기 돌봄의 현 상황을 전했다. 김이사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는 죽음, 고통 없는 편안한 죽음,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의미 있는 행복한 삶 이후 죽음 등 크게 4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의 77%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하는 국내 상황에서 의료기관 대부분에 임종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간호사 처치실에서 환자가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고, 요양기관은 가족들 왕래 없이 지내다 임종 이후 가족들이 방문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생애말기 환자에 대한 돌봄의 질은 낮고 배려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에 입원 가능한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15개 기관으로 260병상에 그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코로나19 기간 여러 공공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7개 기관 105개 병상만 호스피스 병상으로 운영됐다. 동기간 간병서비스를 제공한 기관은 3개 기관 50병상으로 더욱 적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현재 국내 입원형 호스피스의 경우, 서비스 제공처는 적은데 원하는 수요자는 많아 대기 기간이 길다. 서울은 3~4주를 대기하고 대기 중 임종을 맞는 이들도 상당하다. 다른 지역의 상황도 좋지는 않다. 경기도나 인천 역시 1~3주의 대기 기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립경상대 강정훈 교수,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대균 기획이사 (사진=유경수 기자)
국립경상대병원 강정훈 교수,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대균 기획이사 (사진=유경수 기자)

이어 강정훈 교수(국립경상대병원)도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에 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발표를 했다. 강정훈 교수는 해당 설문조사를 전국 만18세 이상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7월 27일~8월 5일까지 10일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응답자 중 60.0%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을 모른다고 답했으며, 응답자 중 61.1%가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고 결과를 전했다.

그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 필요한 지원으로 간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체계 마련 28.6%, 의료비 절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 26.7%,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의 확충 및 지원 25.4% 순으로 나타났다. 의사조력자살 합법화의 필요성은 13.6%로 적은 수치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토론장에 질문을 던졌다. “가족이나 어떤 환자가 질병에 시달려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고통스러워하니 자살을 도와주겠다‘는 대답과 ‘고통을 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 죽지 마세요‘는 대답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요?“라며 조력존엄사의 비정함을 전했다.

이어진 2부 패널토론에서도 조력존엄사의 우려는 이어졌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국민에게 의사조력자살 관련 찬반을 묻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현대의학과 사회적 제도를 통해 제공될 수 있는 통증관리, 정서적 지지 등을 포함한 양질의 생애 말기 돌봄 서비스 내용에 대한 정보제공이 선행돼야 한다“며, “말기 환자에 대해 질 높은 생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국회와 정부가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입법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조력자살은 말기 환자를 둔 가족 간 불신과 불화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며, “질 높은 생애 말기 돌봄 등 양질의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사조력자살 남용이나 악용 우려가 큰 점을 생각했을 때 법안의 입법화보다는 안정적인 양질의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이현 홍보이사, 단국대학교 이석배 교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사진=유경수 기자)
대한의사협회 김이현 홍보이사, 단국대학교 이석배 교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사진=유경수 기자)

대한의사협회도 조력존엄사의 입법화에 대해 반대 입장의 목소리를 외쳤다.

김이연 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이날 토론자로 참석해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강조한 측면과 윤리를 강조한 측면에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며, “조력존엄사 대상자에 해당하는 말기 환자라는 용어 자체는 사전적, 사회적, 의학적 정의가 없는 용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력존엄사는 임종을 앞당기는 행위로 연명의료결정 중단이나 호스피스·완화의료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며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이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만큼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만연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조력존엄사법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상균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지속력을 결정하는 법인데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는 의사조력자살을 연명의료결정법에 포함하는 게 맞는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조력존엄사 위원회 위원장으로 두고 있는데 자살예방 정책도 수행하는 보건복지부에서 의사조력자살의 심의 및 결정을 하는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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