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률] 보험 계약상 소비자의 고지의무
[사람과 법률] 보험 계약상 소비자의 고지의무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2.06.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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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법무법인 사람 변호사
박성민 법무법인 사람 변호사

보험사들이 소비자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일이 잦다. ‘고지의무’는 보험계약의 체결에 있어서 소비자가 보험사에게 중요한 사실을 고하지 않거나 중요한 사항에 대해 부실(不實)한 고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이다.

고지의무는 계약성립의 결과로 소비자에게 발생하는 의무가 아니라 계약성립의 전제가 되는 요건에 불과하므로 순수한 의무가 아니고 이른바 간접의무에 속하는 것이다. 때문에 보험사는 소비자에게 이를 강요할 수 없으며, 소비자가 이에 위반했다 하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만약 고지의무를 위반했을 때는 보험사가 일정한 요건 하에서 보험계약을 해지(解止)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소비자는 보험금을 취득할 수 없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게 된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24개 생명보험사의 보험금 부지급 건수는 6065건으로, 이 중 절반이 넘는 3355건이 고지의무위반에 따른 부지급이다. 또한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고지의무위반으로 보험계약이 해지된 건수는 2017년 9242건, 2018년 1만820건, 2019년 1만2200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보험상품 가입 시 소비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것은 맞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보험금을 타낼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어디까지 고지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가입하고 뒤늦게 보험금을 신청할 때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소비자원에서도 고지의무 관련 피해구제 신청 195건을 분석한 결과 ‘소비자의 의도치 않은 고지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신청 사건이 124건(63.6%)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보험설계사의 고지의무 이행 방해’로 인한 신청이 35건(17.9%), ‘고지의무 불이행과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 부족’으로 인한 신청이 23건(11.8%) 등으로 뒤를 이었다.

이와 같이 의도하지 않은 고지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소비자는 보험계약 가입 및 유지에 있어서 고지의무의 내용을 더 명확하게 알아보고 고지를 충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보험청약서에서 고지의무 대상으로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번 문항에서 ‘질병의심소견’이란 의사로부터 진단서 또는 소견서를 발급받은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투약’이란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므로 환자가 처방전만 받았을 뿐 실제로 약을 구입하지 않았어도 고지의무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2번 문항에서 ‘혈압강하제’란 혈압을 내리게 하는 의약품을, ‘각성제’란 신경계를 흥분시켜 잠이 오는 것을 억제하는 의약품을 말한다.

실무상 흔히 문제가 되는 것은 3~4번 문항이다. 3번 문항에서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하여 추가검사(재검사)를 받은 사실’이란 의사로부터 문진 등을 받고 질병의심 소견 등에 의해 검사를 받은 일체의 경우라고 확대하여 해석해서는 안 된다. 최초의 검사(진료)를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다른 종류의 검사(추가검사) 또는 같은 종류의 검사(재검사)를 받는 경우로 좁게 이해해야 한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5. 20. 선고 2015나67009 판결)

그리고 4번 문항에서 ‘계속하여’란 같은 원인으로 치료 시작 후 완료일까지 실제 치료, 투약받은 일수를 뜻하는 것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동일한 병증 또는 하나의 사고로 치료를 시작한 날로부터 종결한 날까지 실제로 치료받은 일수를 합산하여 7일 이상이거나 30일 이상 약 처방을 받았으면 고지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동일한 병증’인지 여부는 그 병증의 원인, 경과, 구체적 발현증상, 치료방법, 그에 대한 의학 등에서의 질병분류 등의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균적인 보험계약자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 획일적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입장(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9다59688 판결)이나, 막상 본인이 고지의무자의 입장이 되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목감기로 시작한 가벼운 감기 증상에 대해 수차례 병원에 내원하여 감기약을 처방받았으나 여러 사정으로 제대로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않은 사이 코감기 등으로 이어지면서 치료 기간이 30일 이상으로 길어진 경우는 ‘동일한 병증’에 대한 치료일까.

피부염 증상이 배에서 먼저 나타나 배 부분에 대해서는 약 2주간 치료를 받고 호전되었으나 곧이어 허벅지 등으로 번져 나가 허벅지에 대해서도 치료를 받는 사이 치료 기간이 30일 이상으로 길어졌다면 배에 대한 치료와 허벅지에 대한 치료를 모두 ‘동일한 병증’에 대한 치료로 봐야 할까.

의학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해당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실무상 마주하는 분쟁조정사례를 보면, 위 고지의무사항 질문표에 해당하는 질문을 충실히 이행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보험소비자로서는 그저 최대한 성실하게, 누락하지 않고 고지할 것을 권하고 싶다.

끝으로 설령 고지의무사항에 대한 누락 또는 부실고지가 있었다고 하여 무조건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상법 제651조에 따르면 보험계약 당시 소비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의 고지를 했다 하더라도 보험사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내, 계약체결일로부터는 3년 내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므로 계약체결일로부터 3년이 경과한 경우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그리고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보험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한 경우 소비자는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다만 그와 같은 증명책임은 소비자에게 있으므로, 분쟁이 발생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한다.

 

<박성민 변호사 프로필>
-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
- 現 법무법인 사람 변호사
- 現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산재 전문변호사
- 現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손해배상 전문변호사
- 現 국방부 지뢰피해자 및 유족 여부 심사 실무위원회 위원
- 現 서울글로벌센터 전문상담위원
- 現 양천구 노동복지센터 법률자문 및 노동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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