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미 정상회담 그 후... 줄타기는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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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5.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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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동맹 ‘칩4’ 간단하지 않은 문제
자동차·방산업계, ‘윈-윈(win-win)’ 산업?
지난 20일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세번째)과 윤석열 대통령(왼쪽에서 네번째). (사진=대통령실 제공)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지난 20일부터 2박 3일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하자마자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찾았다. 대통령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서 대한민국을 가장 먼저 방문한 점, 그리고 첫날부터 삼성전자 공장을 찾은 점이 눈길을 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평택 공장을 찾은 바이든 대통령은 3나노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웨이퍼에 함께 서명했다. 공장을 직접 둘러보며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후 발표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공급망 생태계 내 당면한 도전과 장기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간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선진 기술의 사용이 국가안보와 경제 안보를 침해하는 것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 관련 해외 투자심사 및 수출통제 당국 간 협력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부터 제안해온 새로운 반도체 동맹, 이른바 ‘칩4(CHIP 4)’ 동맹에 재차 방점을 찍고자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정부에 ‘칩4’ 동맹을 제안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TSMC로 각각 메모리 분야와 파운드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과 대만, 그리고 소재·부품·장비 분야 강국인 일본을 하나로 묶겠다는 전략이다.

◆ “들어가느냐 마느냐” 반도체 동맹...줄타기 시작

미국이 반도체 동맹을 제시한 이유는 최근 반도체 업계가 제조 분야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소프트웨어와 설계 부문에 집중하고 생산 부문은 분사하거나 아예 손을 떼는 전략을 취했다. AMD에서 생산 부문이 분리돼 새로 생긴 회사 ‘글로벌 파운드리(Global Foundries)’를 예로 들 수 있다. 미국의 주요 기업이 생산 분야에서 손을 떼자 아시아에서 해당 부문에 뛰어들기도 했는데, 이 경우는 대만의 TSMC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반도체 생산 기업들은 14나노, 10나노 공정이 한계였던 시대를 넘어 이른바 ‘초미세공정’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초미세공정 경쟁의 선두에는 대만의 TSMC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그리고 미국의 인텔이 있다. 삼성은 지난해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1’에서 2025년까지 2나노 공정 양산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인텔은 지난해 파운드리에 다시 진출한다고 선언한 뒤 오는 2024년 하반기까지 1.8나노 제품을 만들겠다고 밝혔고, TSMC는 오는 6월부터 1.4나노 공정 개발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초미세공정 경쟁이 심화하다 보니 퀄컴, 엔비디아, 애플 등 반도체 설계와 소프트웨어 분야를 다루는 미국 기업들은 생산 부문의 부가가치가 올라가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과거에는 생산 부문을 중요하지 않게 여겼지만, 이제는 오히려 공급망 확보가 중요해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평택 공장에서 한 연설에도 이러한 인식이 잘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경제와 국가안보가 우리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에 의존하지 않도록 주요 공급망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것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한국과 같이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것이 아시아 순방에서 한국을 처음으로 온 이유”라며 “지금이 서로 투자하고 경제적 공조를 강화할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미 정상은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찾아 3나노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웨이퍼에 함께 서명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그러나 우리 정부 입장에서 ‘칩4’ 반도체 동맹 가입은 쉽지 않은 문제다. 미국, 대만, 일본, 한국이 하나로 묶인다는 것은 중국을 노골적으로 겨냥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 1280억 달러 중 대중국 수출은 502억 달러로 약 39%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을 포함하면 60%까지도 올라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은 중국 현지에 공장을 두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됐을 때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연구위원은 지난 4월 발간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과 정책적 시사점’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면 메모리반도체의 경쟁우위 유지 등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글로벌 위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올라간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 구조상 생산은 미국의 기술이 필요하고 수요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어느 한 방향으로 노선을 정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지금까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없어 양국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된 후에는 애매모호한 중립 유지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정부는 ‘칩4’ 합류는 아직이라도 미국에 어느 정도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한미 정상 공동 서명에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를 통해 긴밀히 협력하고 IPEF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3일 출범한 IPEF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태(인도-태평양) 지역 경제 협력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13개국이 참여한다. 중국이 주도하고 15개국이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맞서는 구도다.

◆ 반도체·자동차·방산...수혜 산업은?

전문가들은 국제 정세와 별개로 이번 바이든 대통령 방한으로 부각된 산업이 있다고 평가한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평택 공장 방문은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 첫 순방 일정으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것은 삼성 반도체가 경제 및 안보의 전략자산으로 부각된 것”이라며 “세계 최대 반도체 팹(fab)인 평택 공장이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미국 조지아 주에 55억 달러를 들여 전기차 공장을 짓고 신기술에 투자하기로 한 현대자동차그룹은 바이든 대통령 면담 후 “2025년까지 미국에 5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대차의 투자는 8000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며 화답했는데, 전문가들은 미국 투자가 현대차그룹에도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지 공장 설립으로 현대차그룹은 최대 5000달러의 대당 추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며 현대차가 받을 수 있는 수혜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현대차 그룹과 유사한 규모(50억 달러)의 투자를 단행한 리비안은 15억 달러의 세제 패키지를 확보한 사례가 있다”며 유사한 규모의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국방 상호조달 협정 체결을 추진해나가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방산업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국 방산제품이 미국에 본격 진출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대부분의 첨단 무기체계를 직접 개발·생산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부가가치나 제한적인 수요 등으로 직접 생산하지 않는 일부 무기체계만을 해외도입하고 있어 무기체계의 수출 성과로 연결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미국 스스로 공급망 취약성을 인정한 배터리, 주조 및 단조, 반도체 등에서의 협력은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인 만큼 조기에 가시화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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