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착한 아이’에 대한 생각
[교육칼럼] ‘착한 아이’에 대한 생각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2.03.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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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범 서울교대 강사
방승범 서울교대 강사

3월 새학기가 시작됐다.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하고 학부모 공개수업, 학부모 상담 등을 하기에 교사에게 있어서 3월은 정말 바쁜 달이다.

상담하면서 교사로서 느낀 점은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착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 부모님들에게 아이에 관해 물어보면, 부모님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아이는 착해요~”라고 말씀하시고, 또 자녀가 ‘착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학생들에게 종종 어떤 학생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곤 한다. 그럼 다수의 학생은 ‘착한 학생’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왜 착한 학생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보면, 학생들은 부모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해서, 착한 게 좋을 것 같아서 등의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착한 학생’이 되고 싶다는 학생의 말을 들을 때마다 아쉬움이 생기곤 한다. ‘착한 학생’이 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학생들이 왜 착한 학생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심화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착한 학생’이 되기 이전에 왜 ‘착한 학생’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립 국어원의 표준 국어 대사전에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를 의미한다고 나와 있다. 이는 ‘말이나 행동, 마음이 남을 생각하고 올바르며 친절하다’로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교육에서 말하는 배려, 정직, 친절의 가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착하다’의 의미는 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현실에서의 ‘착하다’는 주로 남이 말을 할 때 동의를 하고, 이를 잘 따라주며, 타인이 하는 일에 무조건적으로 도와줄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착하다’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착한 아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는 ‘착한 아이’이고, 친구랑 싸우지 않는 아이는 ‘착한 아이’ 등 ‘착한 아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아이들도 이런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

‘착한 아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착한 아이’를 인지하는 과정 자체가 잘못이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착한 아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형화되어 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알려주고 이를 습득하게 하는 데 있다. 결과를 중요시했던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과정도 중요시한다. 이에 맞게 아이들이 ‘착한 아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특성에 맞게 ‘착한 아이’에 대한 개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현재 ‘착한 아이’에 대한 교육 과정은 학생 중심 활동 교육이 아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착한 아이’의 의미를 파악해보고 이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착한 아이’에 대한 개념이 성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를 지속적으로 말한다면,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착한 아이 증후군’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도 한다. ‘착한 아이 증후군’은 어른(타인들)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콤플렉스를 의미한다. 의사 결정, 행동 등을 할 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겨 타인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내면화한다.

MZ세대들은 각각의 개성을 중요시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표현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인간관계 등의 기본적인 관계도 형성할 수 있다.

만약 표현하지 않는다면 마음 상태 등을 파악할 수 없기에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생각 등을 표현하는 것을 많이 어려워한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난 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다를 경우 이를 두려워할 수도 있다.

‘착한 아이’는 학생에게 있어서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움 줄 수는 있지만 반대로 ‘착한 아이’만을 강조하는 경우 학생의 개성, 자아 등을 발아, 발전시키는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 타율적인 ‘착한 아이’가 되지 말라는 말을 종종 한다. 이 말을 들은 학생들은 처음에 많이 놀란다. 특히 모범적인 학생들은 필자가 저 말을 할 때,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교육의 입장에서 ‘착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만 타율적인 ‘착한 아이’라는 모호한 개념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맞는 주체적인 ‘착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착한 아이’가 되기보다 먼저 ‘배려를 할 수 있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두 개념은 얼핏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다.

‘착한 아이’의 기준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 있다. 즉,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배려를 할 수 있는 아이’의 기준은 학생 자신에게 있다. 배려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생각함과 동시에 타인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타율적인 ‘착한 아이’들은 표현을 하는데 미흡하다. 표현할 경우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르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소통이 필요한데, 의사소통 과정에 마찰이 있을 수 있다. 타율적인 ‘착한 아이’의 입장에서 마찰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착한 아이는 마찰이 생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기에 ‘착한 아이’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없기에 친교성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자존감도 점점 더 낮아질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착한 아이’는 배려, 예절, 효 등 도덕에서 강조하는 가치 덕목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학생들이 이런 ‘착한 아이’로 성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타율적인 ‘착한 아이’가 아니라 주체적인 ‘착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방승범 강사 프로필>
- 서울교대 학사 및 동 대학원 졸업
- 디지털 교과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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