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아이들이 사고에도 덜 다치는 이유
[건강칼럼] 아이들이 사고에도 덜 다치는 이유
  • 유경수 기자
  • 승인 2022.03.0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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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칼럼 열 번째 시간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사진=경희의료원 제공)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사진=경희의료원 제공)

연휴 동안 있었던 일이다. 침대 모서리 좁은 틈으로 장난감이 떨어져 아이들이 아우성이었다. 매트리스를 통째로 올려 장난감을 겨우 꺼낸 후 다시 내려놓았는데, 이게 웬걸! 반대쪽 모서리 틈에 쿠션이 끼이는 바람에 매트리스 한쪽이 높아져 기울어졌다. 첫째 아이가 ‘미끄럼틀이다!’라고 외쳤고, 그때부터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터를 만난 듯 기울어진 매트리스 위에서 한참 동안이나 데굴데굴 놀았다.

꽤나 자주, 예기치 못한 상황에 아이들이 더 즐거워하는 것을 발견한다. 장난감, 놀이터가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큰맘 먹고 놀이공원이나 키즈카페로 향하는 중인데, 막상 아이들은 가는 길에 보이는 특이한 모양의 벤치나 녹지 않고 얼음이 돼버린 눈덩이에 더 호기심을 가지며 한참 동안을 즐거워한다. 얼른 도착해서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계획에 없던 광경에 더 즐거워하기도 한다.

상황에 대한 변화뿐 아니라 실질적인 외부 충격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일가족이 같은 차 탑승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함께 진료실에 내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다수의 부모들이 뒷목과 허리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반면, 자녀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랐을 뿐, 신체적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젊은 세포들이 만들어낸 특유의 신체적 유연성과 외부 충격에도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고 그 변화에 몸을 맡기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따라서 증상도 없고, 혹여나 있더라도 성인보다 훨씬 빠른 회복을 보인다. 과연 같은 차에 탔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이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보다 덜 다친다.

아이들이 예기치 못한 변화에 대해 보여주는 신체·정신적 유연함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재산의 증감, 직장 내 승진, 그 외에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변화와 외력(外力)에 대해 지나치게 움츠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일이 애초에 계획한 것과 다르게 흘러갈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세상에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으며, 같아 보이는 상황도 계속해서 변하기 마련이다. 어제 거울에 비친 모습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오늘의 내 몸도, 처마 밑 빗방울이 떨어져 부딪치는 바위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만물이 변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주역(周易)‘이라는 고전이 쓰인 것처럼,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일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느껴지는 지루함과 달리 실상 매일매일은 변화의 연속이다. 문제는 크고 작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에 있다. ‘철들면 늙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변화를 무서워하면 늙은 것’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 반면 배낭여행을 기피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마음의 굳어짐은 평소 불필요한 긴장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데, 외형적으로는 양 어깨가 앞쪽으로 말린 ‘둥근 어깨(round shoulder)’나 머리가 몸통보다 앞으로 나와 있는 ‘거북목’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의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작은 스트레스에도 나타나는 반복적이고 과도한 긴장은 우리 몸과 마음을 모두 병들게 한다. 변화는 막을 수 없다는 진리 하에서는, 이를 스트레스로 생각하느냐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느냐가 결과를 달리한다.

한의학의 원류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몸 안의 기운이 충만하면 병이 들어오지 않는다(正氣存內 邪不可干)’라고 한 것은 흔히 면역력의 개념으로 해석되는데, 기운이 충만하다는 것은 비단 맞서는 힘이 강한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기치 못한 변화의 물살에 흔연히 몸을 맡기는 것도 기운이 건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경희대한방병원 김형석 교수 프로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석·박사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재활의학과 임상조교수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이사

-한방비만학회 이사

-추나의학 교수협의회 간사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정회원

-대한스포츠한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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