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보장" vs "이건 아냐"...엇갈린 시선
"장애인 이동권 보장" vs "이건 아냐"...엇갈린 시선
  • 최인환 기자
  • 승인 2022.02.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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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째 이어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
"장애인 차별은 사회적 책임문제...기재부 예산 반영 우선돼야"
"개선 사항 요구는 정당하지만 무고한 시민 피해는 이제 그만"
지난 18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충무로역을 시작으로 경복궁역, 한성대역, 혜화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베이비타임즈)
지난 18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충무로역을 시작으로 경복궁역, 한성대역, 혜화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베이비타임즈)

[베이비타임즈=최인환 기자] "시민 여러분, 출근길 지각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장애인도 이동하고 싶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안전하고 편리하게 지하철을 타고 싶고, 지하철을 타려다가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21년을 외쳤음에도 아직 22개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출근 지하철에 몸을 싣는 아침 7시 30분, 오늘도 서울 지하철의 한 곳에서는 휠체어 위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인파 사이에서 외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호소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담고 있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오죽했으면 이러겠냐"며 고개를 끄덕이고, 일부 시민들은 "출근길에 도대체 뭐하는 행동이냐"며 화를 내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8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충무로역을 시작으로 경복궁역, 한성대역, 혜화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베이비타임즈)
지난 18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충무로역을 시작으로 경복궁역, 한성대역, 혜화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베이비타임즈)

지난 2021년 12월부터 세달째 이어지고 있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현재 제약받고 있는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지난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하면서 이를 사용하던 승객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크게 다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제도적인 안전관리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장애인들은 사고에 무방비인 상태에서 리프트를 이용할 수 밖에 없던 실정이었고 이에 전장연을 포함한 한국의 전 장애인 및 장애인 단체가 강력하게 반발해 지하철 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는 항의 시위까지 벌였다. 이후 수도권 내 역사는 물론 대중교통에도 장애인 이용보조기구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을 발표하고 2022년까지 서울시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100% 설치, 2025년까지 시내 저상버스 100% 도입을 약속했음에도 현 시점에서 서울시 지하철 283개 역사 중 22개의 역사(7.8%)에는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가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전장연은 서울시에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지하철에 올랐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단순히 약속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재정부에서 확실하게 예산을 편성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은 장애인들의 요구를 일부 반영해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국가 또는 지자체의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등) 이동지원센터・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비용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법안 내용 실현을 위한 예산 조항이 '임의 조항'으로 바뀌며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예산을 편성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기재부 입맛에 맞게 개정된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한 저상버스 도입 의무대상이 고속버스를 제외한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에 국한되면서 장애인 이동권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18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충무로역을 시작으로 경복궁역, 한성대역, 혜화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베이비타임즈)
지난 18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충무로역을 시작으로 경복궁역, 한성대역, 혜화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베이비타임즈)

이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기재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예산 반영을 못박고, 대선 후보가 '장애인 권리예산을 반영하겠다'는 말 한마디라도 하면 지하철 시위를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하철 시위 현장에서 "시민 여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정부는 법에 보장된 장애인의 권리를 지켜달라"고 주장하며 시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울러 각 대선 후보들에게도 "하루빨리 (대통령 후보들이) 약속을 하고, 기획재정부가 예산 반영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장애인 예산의 의무화를 요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홍보자료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홍보자료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출근길 지하철을 타는 것으로 인해 듣는 수많은 욕설과 혐오 표현은 감당하겠다”며 시민들의 욕설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우리가 이제 ‘욕의 무덤’에 들어가서라도 대한민국 사회가 20년을 외쳐도 중증장애인들의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무관심과 불평등의 사회는 변해야 한다”며 사회 변화를 촉구했다.

이러한 전장연의 입장에 어떤 시민들은 "그럴 수도 있다"며 "불편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 시민은 “그동안 장애인 단체들의 ‘불편하다’는 목소리에는 귀기울이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저들에게 불편하다고 말한다면 그 목소리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현장에서 만난 한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그래도 저분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면서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환경이 전보다 개선된 것도 사실"이라며 전장연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이들을 향해 "장애인도 중요하지만 출근은 해야할 것 아니냐. 자기 권리 찾겠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되냐"며 분노를 표했다.

강서구에 거주하는 A씨는 해당 시위에 대해 "자꾸 이런 식으로 출・퇴근길에 파업하면 불편하다"며 "그분들의 상황이 딱하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방식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우리도 정당하게 돈을 내고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데 왜 피해를 입어야 하냐"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며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아울러 "이렇게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해 서울메트로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확실한 강구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북구에 사는 B씨의 경우 "덕분에 회사에 꾸준히 지각하고 있다"며 "하루 이틀은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시민들은 볼모가 아니다"라며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 시위를 진행한다면 시민들의 불만이 더 높아지면서 적대감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충무로역을 시작으로 경복궁역, 한성대역, 혜화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베이비타임즈)
지난 18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충무로역을 시작으로 경복궁역, 한성대역, 혜화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베이비타임즈)

서울교통공사와 경찰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에 나섰다. 경찰은 지난달 17일 집시법 위반 및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를 입건했다. 서울교통공사 역시 시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더 이상 운영에 차질은 빚지 않겠다며 전장연 등을 상대로 시위로 인해 정상적으로 열차를 운행하지 못한 점을 들어 3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혜화역 승강장의 선전물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혜화역 승강장의 선전물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한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어제와 오늘 홈페이지가 집중 공격으로 다운됐다”며 “혜화역 승강장의 선전물은 누군가에게 뜯겨나갔고 지하철 선전전을 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는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폭언과 협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동하고 싶고, 교육받고 싶고, 노동하고 싶다는 외침에 혐오가 아닌 응원의 말을 보태달라”며 “누군가의 지하철이 아닌 모두의 지하철이 되는길, 시민들의 응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3세기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중결과의 원리를 제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의도였다면 나쁜 결과를 가져왔어도 용서할 수 있지만, 좋은 목적을 가지고 나쁜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끝난 후 혜화역 승강장 벽면에는 장애인 을 알리는 가 붙어있었다. (사진=베이비타임즈)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끝난 후 혜화역 승강장 벽면에는 장애인 권리예산을 요구하는 선전물이 붙어있었다. (사진=베이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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