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판단 기준, 세분화 필요...학대와 훈육, 그 사이에서 ②
학대 판단 기준, 세분화 필요...학대와 훈육, 그 사이에서 ②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1.12.0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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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훈육이고 학대인가...현장 가치판단 쉽지 않아
"아동 이야기 들어달라"...기준 없으면 피해는 아동 몫
학대와 훈육에 대한 고찰 토론회. (사진=아동권리보장원 제공)
학대와 훈육에 대한 고찰 토론회. (사진=아동권리보장원 제공)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지난해 6월, 만 12세 아동을 자녀로 둔 A씨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자녀를 훈계했다. 하지만 아동은 오히려 대들면서 A씨의 팔을 때리고 배를 찼다. A씨는 40cm 길이의 대나무 소재 죽비로 자녀의 발등과 등을 각각 1회 때렸다.

해당 가정에서는 자녀에 대한 체벌 기준을 도둑질, 거짓말, 부모에게 욕하거나 부모를 때리는 경우로 정한 상태였다. 또한 절제된 체벌을 위해 공방에서 죽비를 마련해 ‘사랑의 매’로 정해뒀다. 다만 이 사건 전에 죽비는 체벌 수단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다. 이런 경우 A씨는 아동학대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까?

지난 6일 아동권리보장원과 19명의 국회의원이 함께 개최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는 학대와 훈육의 경계에 대한 고찰이 오갔다.

한상규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와 같은 사례를 소개하면서 복지 측면에서 접근하는 아동학대 개념과 범죄 측면에서 접근하는 아동학대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실제 사건에서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등을 전했다.

한 교수는 “아동학대행위로 보는 것과 아동학대 ‘범죄’ 행위로 보는 것은 다르다.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엄격한 해석의 잣대가 적용되기 때문이다”면서 “아동 이익 우선의 원칙에 따라 피해 아동의 관점에서 아동학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완정 인하대학교 아동심리학과 교수는 학대 및 체벌이 아동에게 미칠 수 있는 스트레스와 공격성 등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양육자의 긍정적인 훈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체벌을 받은 아동군이 체벌을 받지 않는 아동군보다 공포에 반응하는 두뇌 부위를 과하게 활성화하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체벌이 환경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는 신경반응체계를 바꿀 수 있음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 학대와 학대범죄, 현실적 구분 어려워...인식 전환 중요

주제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먼저 법무법인 인 허용 변호사가 아동학대와 아동학대범죄 개념 구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을 시작했다.

허 변호사는 “아동복지법에서는 아동학대행위를 금지하면서 아동학대행위를 한 자를 형사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이런 아동학대행위까지도 아동학대범죄로 본다”며 “현실적으로 양자를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동학대의 판단 자체가 이미 학대 행위자에 대한 제재의 근거로 작용하는 사례는 여럿 있다. 학원법에서는 학습자(학원생)에 대해 아동학대 행위가 확인된 경우 교육감이 학원의 등록을 말소하거나 1년 이내의 기간에 교습과정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교습 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유아보육법에서도 어린이집 안에서 아동학대행위가 있으면 시설폐쇄나 1개월에서 7개월간 운영정지 처분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강귀숙 강원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법 개정에 이어 체벌 금지의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인식 전환을 위해 다양한 홍보와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 1979년 세계 최초로 가정 내 자녀체벌을 금지한 스웨덴의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스웨덴의 법 개정 목적은 ‘처벌’이 아닌 ‘인식전환’이었음을 강조했다.

강 관장은 “스웨덴은 부모의 사고방식 변화를 위한 정보제공과 교육이 형벌 체제에 의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봤다”면서 “다양한 TV와 라디오 광고, 포스터, 팸플릿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고 주기적으로 체벌 실태와 장단기 연구를 실행한 결과 법이 도입되고 2년 뒤 90% 이상의 부모들이 체벌이 불법임을 인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학대 판단 기준 세분화 필요...피해는 결국 아동 몫

현장 공무원과 부모들의 목소리도 한자리에 모였다. 엄태수 천안시 아동보육과 아동보호팀장은 스마트폰 채팅을 통해 성인 남성을 만나러 나가는 중학생 딸 자녀를 막아서다가 딸에게 상흔을 입힌 엄마의 사례를 소개했다.

엄 팀장은 “부모는 ‘어느 부모가 늦은 밤 성인 남성을 만나러 나가는 딸을 막아서고 훈육하지 않겠느냐’고 출동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에게 다시 질문했다”면서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부분이 바로 아동학대 판단이다”고 전했다.

아동학대를 판단할 때 중요한 요소인 연령별, 대상자별 판단 매뉴얼이 세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엄 팀장은 “세분화된 판단 매뉴얼을 통해 더 전문적으로 현장에서의 아동학대 판단과 대응에 적극적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동학대 피해를 당한 아이의 엄마인 B씨는 아동의 진술을 신뢰하고 귀 기울여 들어달라고 강조했다. B씨는 자신의 아이가 해바라기 센터에서 강제 급식 학대에 관한 내용을 수십 번 이야기해도 학대 판정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B씨는 “선생님 이름까지 말하고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이야기해도 구청 대응팀은 정황이 부족하다는 말만 반복했다”며 “이렇게 되면 물증이 없거나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학대 사건은 부모가 발 벗고 뛰지 않으면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이가 유치원에서 직접 친구들과 다른 교사에게 일주일간 자신의 학대 상황을 이야기했음에도 원장님은 ‘아이가 놀면서 한 말이다’면서 학대 의심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B씨는 구청에서 내놓은 “학대 의심은 개인의 판단”이라는 반응에 울분을 표하며 “신고 의무 위반에 대해 엄격하게 행동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아동권리보장원 윤혜미 원장은 “이번 토론회에서 제시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아동 최선의 이익 관점에서 아동학대를 예방할 방안을 모색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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