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음악육아] 영화 '피아니스트' 속 쇼팽 곡으로 재조명한 예술의 힘
[김연수의 음악육아] 영화 '피아니스트' 속 쇼팽 곡으로 재조명한 예술의 힘
  • 지태섭 기자
  • 승인 2021.09.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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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 겸 부모교육 코치
김연수 작가 겸 부모교육 코치

쇼팽 발라드 제 1번 G minor Op.23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우승자 조성진이 도이치 그라모폰과 최근 두 번째 쇼팽 앨범을 발매하고 지난달 한국 투어를 시작했다. 티켓이 판매되는 시간이 그의 인기를 짐작하게 하는데, 그의 첫 번째 앨범에 담겼던 곡이자, 영화 피아니스트의 명장면에 삽입되며 더욱 유명해진 쇼팽 발라드 1번 G minor를 통해 예술의 힘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쇼팽 발라드 1번은 쇼팽이 가장 혈기 왕성한 20대 초반, 18301~35년에 완성했다. 이 시기, 러시아의 압제에 대항하여 폴란드의 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쇼팽의 친구들은 폴란드 독립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비엔나를 떠났지만, 쇼팽은 피아노 음악으로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청년 쇼팽의 솔직하고 거친 감정을 때로는 선전포고 하듯, 때로는 장엄하게 건반에 쏟아 내놓고 마침내 사단조의 무거운 화음으로 끝을 맺는다. 쇼팽의 섬세함과 젊은 청년의 거친 열정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곡이다.

동시대 최고의 작곡가, 슈만이 극찬했던 곡

쇼팽과 슈만은 각각 폴란드와 독일에서 1810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이자,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작곡가였다. 슈만이 직접 발간하던 음악 잡지 ‘음악신보’에 쇼팽을 소개하며 쇼팽이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 뒤로도 슈만과 쇼팽은 서로의 곡에 대한 평을 종종 나누며 우정을 나눴다. 슈만은 서신을 통해 “쇼팽이 나에게 발라드 한 곡을 보내 주었는데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곡보다도 독창성 풍부한 작품이다. 그의 천재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곡이다”라며 극찬을 했다. 쇼팽 역시 자신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밝혔던 곡이기도 하다. 

 쇼팽은 첼로 소나타과 몇 몇 개의 가곡을 제외하곤 대부분 본인의 양손으로 연주할 수 있는 음악, 즉 피아노 음악만 작곡했다. 그는 우리에게 유난히 친근한 악기인 피아노 곡을 써주었기에 가까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너무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오히려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 마져 준다. 너무도 고귀해서. 

바흐는 가장 놀라운 별들을 발견한 천문학자이다. 베토벤은 우주에 도전한다. 나는 그저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표현하려 할 뿐이다. -쇼팽-

영화 피아니스트 포스터.(사진=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영혼을 움직인 위대한 선율 

쇼팽 발라드 1번을 이야기 할 때 영화 피아니스트 ‘The Pianist, 2002’ 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어린 시절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가스실에서 유태인 어머니를 잃는 불행을 겪었던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nski, 1933~) 감독이 실존 피아니스트 스필만(Wladyslaw Szpilman, 1911~2000)의 생존 수기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폐허가 된 도시에 숨어 지내던 유태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배가 고파서 피클 깡통을 따려다가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에게 발각된다. 유태인 도망자임을 눈치챈 독일 장교가 신분을 묻자 피아니스트였다고 신분을 밝힌다. 침묵이 흐르고 먼지가 수북히 쌓인 그랜드 피아노를 가르키며 연주를 해보라고 명령한다.

전쟁이 난 뒤로 몇 년간 피아노를 칠 수 없었고, 폐허가 된 삶 만큼이나 그의 손과 마음은 굳었을 것이다. 총을 든 독일 군이 앞에 서 있다. 추위와 두려움에 손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고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조율되지 않은 뻑뻑한 건반을 연주하는 순간은 영화 피아니스트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독일 장교 앞에서 인생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순간, 스필만은 허공에 무거운 선율을 울려내기 시작한다. 독일 장교 앞에서 적어도 독일 작곡가 : 바흐, 베토벤, 슈만, 멘델스존의 곡을 연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총을 가진 독일 군 장교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스필만은 폴란드 작곡가,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한다. 

그 당시 스필만이 실제로 연주했던 곡은 쇼팽의 야상곡 올림 다단조(Chopin: Nocturne No 20 in C Sharp minor) 였다. 훗날 스필만의 회고에 의하면 장교에게 들켰던 당시 손톱이 너무 길어서 쇼팽 발라드를 도저히 칠 수 없어서 비교적 기교가 덜 들어가는 야상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영화상에서는 더욱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 발라드 1번을 선택했다고 하니. 이 또한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음악이 끝나고 독일 장교 호젠펠트는 스필만이 숨어있는 곳을 확인하고 그 뒤로도 식량과 따뜻한 옷을 챙겨준다. 전쟁과 유태인 무차별 학살이라는 엄청난 현실 속에서 또 다시 끔찍한 죽음의 순간을 직면했지만 스필만은 피아노 덕분에 목숨을 구한다. 그 순간을 스필만은 그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독일 군 제복을 입은 유일한 사람을 만났다” 독일군들에게 유태인은 벌레 같이 하찮은 존재였지만, 스필만의 목숨을 건 연주는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를 증명하는 고귀한 순간이었다. 쇼팽의 음악은 더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떤 음악을 연주했어도 호젠펠트는 스필만의 진실한 연주에 심취하고 인간적 가치를 알아보았지 않았을까.  

톨스토이의 말처럼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이 있다.

자녀에게 스토리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자

최근 조성진이 한 인터뷰에서 클래식의 대중화보다는, 대중의 클래식화를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크게 공감하면서 인터뷰를 마주했다. 클래식을 막연히 어렵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을 스토리와 함께 한 곡씩 들어보면 어떨까? 유난히 청명한 가을날, 아이들과 영화 피아니스트를 감상하고 쇼팽의 음악에 흠뻑 빠져보길 바란다. 마침 다음 달에는 제 18회 쇼팽 피아노 국제 콩쿠르 본선이 시작되니 쇼팽의 피아노 음악에 빠져들기 더 없이 좋은 기간이 될 것이다. 살아있는 스토리에 아이들의 눈과 귀가 더욱 반짝일 것이다.  

추천하고 싶은 앨범과 영상

클래식 최고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1988년에 발매한 크리스티안 짐머만과 2016년에 발매된 조성진의 쇼팽 발라드 연주를 비교하면서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짐머만은 1975년, 조성진은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이다. 

조성진이 쇼팽 발라드 1번을 해설과 함께 연주하는 영상 또한 유튜브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차분하게 설명하다가도 연주를 보여줄 때는 순간적으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분하고 진지한 그의 목소리와 함께 연주 철학이나 곡에 대한 해석을 함께 듣고 나면 그의 음악에 더욱 빠져들 것이다. 

<김연수 작가 프로필>
- 시드니 대학교 피아노 연주과 학사, 석사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졸업
- 前 동서울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 現 미라클 베드타임 대표
- 저서: △미라클 베드타임 △9시 취침의 기적 △악기보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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