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아이러브안과, 성악하는 안과의사 박영순 원장에게 듣는다.
[인터뷰]아이러브안과, 성악하는 안과의사 박영순 원장에게 듣는다.
  • 구미라 기자
  • 승인 2021.07.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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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라식-라섹 보급한 선구자이자 전도자
노안 환자 위해 국내 최초 국제노안연구소 설립
노안백내장수술을 하고 있는 아이러브안과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노안백내장수술을 하고 있는 아이러브안과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베이비타임즈=구미라 기자] 한평생 눈과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라식·라섹을 보급한 선구자이자 전도자이기도 하며 이후에는 노안수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2의 인생을 선물해주는 박영순 원장을 그가 운영하는 아이러브안과에서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부터 현재의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라식을 많이 알리게 된 것은 안과로서 어마어마한 대사건이었다. 1996부터 라식-라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는 불이 붙어서 그때 환자가 몰려들었다. 대학교수들도 안과로 미친듯이 개업을 했다. 라식-라섹수술의 선두주자로 매스컴에서 크게 부각이 됐었다. 또 국가대표 선수들을 애틀란타 올림픽때 무료 수술한 것을 계기로 대한체육회에서 눈 나쁜 선수들 100여 명을 보내줘 무료로 라식 수술을 하기도 했다. 

시드니올림픽 때는 양궁 김청태 선수가 금메달을 따게 되자 스포츠 뉴스 MBC SBS KBS 동시에 방영이 됐다. 방송3사에서 동시에 인터뷰 요청을 해 오는 등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라식 이후 2006년부터는 노안수술이 등장했다. 그전에도 박 원장은 라식 이후에 노안수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노안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들을 위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제노안연구소를 설립해 시력교정술의 미개척 분야였던 노안연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미비했다. 그래서 수술을 해도 라식 때만큼 분위기가 살아나지 못했다. 노안 환자의 경우 라식처럼 수술 후에 그렇게 잘 교정이 되는 줄 알고 왔다가 실망하고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후 2~3년 지나면서 지금의 특수렌즈가 등장한다. 초창기에는 미국 알콘에서 개발한 제품이 등장했는데 단점이라고 하면 가까운 게 분명히 보이긴 하는데 초점거리를 맞춰야만 보인다는 게 단점이었다. 다른 안과 병원에 가면 안과의사들이 그런 수술도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불모지였던 상황이어서 환자들이 더 불안해 했던 시절이었다.

스마일라식 수술을 하고 있는 아이러브안과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 안과 제공)
스마일라식 수술을 하고 있는 아이러브안과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박 원장은 라식·라섹도 그렇고 노안수술도 초창기 시절에는 선구자로서의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고 말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했으면 지금과 같은 좋은 시절은 안 왔을 것이라는 회고다. 노안 수술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특수렌즈도 더욱 발전을 거듭한 결과 이제는 수술이후에 중간, 근거리, 장거리 구분없이 잘 볼 수 있게 됐다. 

박 원장은 이제는 노안수술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보급이 돼서 설사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해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수술만큼은 베테랑이고 노력한 것에 대해 안과계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엑시머레이저 수술을 시작으로 라식, 라섹, 노안 수술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 한 우물을 파며 정성을 쏟아온 결과다.    

실제로 박 원장은 지금도 환자들이 많고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라식-라섹의 선두주자로서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기술과 경험이 많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한다. 

물론 20년 전에는 수술현미경과 초음파기계가 성능이 좋지 못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많은 발전이 돼서 당시 꿈꾸던 시대가 도래했다는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더욱 진료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가 지금도 현역 의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진료중인 박영순 시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 안과 제공)
진료중인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 안과 제공)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노인층, 아직도 청춘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안이 와 있는 사람이 엄청 많다. 50대인데 노안이 와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수술하고 나서 인상이 펴지고 얼굴이 환하게 좋아지는 모습들을 보는 게 좋다. 환자들이 돋보기 없이 볼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외관이 부드러워져 나이들은 티를 많이 없애 주니까 일석이조다. 그러면서 삶의 질이 함께 올라간다. 

지금은 나이에 비해 사람들이 젊게 산다. 그렇지만 노안만큼은 반드시 45세 즈음이 되면 찾아오기 마련이다. 45세면 옛날로 치면 30살 정도의 건강을 가지고 있는 나이이고 한참 왕성하게 일해야 하는 세대인데, 노안이 와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볼 때 굉장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노안수술은 인생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눈 영양제나 항산화비타민제를 쉽게 먹을 수 있고 먹는 음식도 좋아져서 몸은 너무 젊은데, 노안 때문에 안보여서 답답해 하는 사람들에게 노안수술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이러브안과 병원 내부사진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아이러브안과 병원 내부사진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노화가 오면 눈물 분비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안구건조증으로 눈이 뻑뻑하고 모래알 들어가 있는 거 같아 오히려 감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황반변성 때문에 시력에 막대한 영향이 오고 결국은 실명할 위기까지 찾아오게 된다. 노화가 와서 생기는 황반변성이나 녹내장, 당뇨병으로 인한 망막질환은 미리 예방하지 않으면 치료가 안된다. 미리 예방하려면 안과에서 1년에 한번쯤은 검진을 받아봐야 한다고 권한다. 

눈건강에는 식생활이 중요하다. 기름기 있는 음식은 가급적 먹지 말고 채소, 과일, 견과류를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 식용유로 튀긴 음식은  황반변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눈도 혈관이 깨끗해야 한다. 눈 속에 있는 혈관은 우리 몸에서 가장 가는 혈관이기 때문에 혈관관리를 못하면 혈관이 막힌다. 눈, 뇌에 있는 혈관은 막히기 때문에 나이들수록 먹는 것을 더 신경써야 한다.  

세월이 갈수록 운동을 해서 근육을 강화시켜야 하는 것처럼 눈에도 혈액순환이 중요하다. 유산소운동은 눈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박 원장 역시 식사에 신경을 많이 쓴다. 기름기 있는 음식은 가급적 먹지 않고 운동은 빠지지 않고 매일 한다. 날마다 항산화 비타민제를 복용하고 매일 아침 4시반에 기상해서 9시에 잠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2016년 캄보디아 봉사 활동에 갔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제공)
2016년 캄보디아 봉사 활동에 갔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제공)

아이러브안과 박 원장은 휴가때는 봉사활동을 간다. 남을 위해 귀한 시간을 사용하는 게 좋단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시간과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이 반드시 좋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봉사활동을 가지 못하지만 2016년 캄보디아 헤브론 병원에 가서 백내장 수술하고 돌아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는 봉사 가는 것에 아쉬운 점은 수술을 통해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치료를 해주고 싶은데, 그런 시설을 갖추고 있는 병원이 적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특히 낙후된 지역에서도 외진 데를 진료하러 가니, 해줄 게 없는 게 항상 아쉬웠다. 돋보기 나눠주고 안약을 주는 것은 치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골,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 눈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순회진료버스를 만들어볼까도 생각했다.  

진료중인 아이러브 안과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진료중인 아이러브 안과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박영순 원장에게 30년 이상 안과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그는 30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빨리 흘러갔다고 말한다. 시력교정수술이 80년대 말 처음 나오기 시작해서 엑시머레이저 시술부터 시작해서 라식·라섹까지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수술이 등장하면서 발전이 거듭되고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지내왔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말 빨리 지나갔다고 회고한다.  

라식수술도 안구추적장치가 나오면서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다. 2000년대 안구추적장치가 등장하면서 엄청나게 안전성을 갖추게 됐다. 눈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안구추적장치가 쫓아다니면서 수술하니까 안전해졌다. 안구추적장치가 없던 시절에는 움직이는 안구를 의사 스스로 추적해 수술을 해야 하는 만큼 수술이 힘들었다. 여러 방법들을 사용해보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줬지만 안구추적장치가 개발된 이후 가히 폭발적인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다.

아이러브안과 4층 내부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아이러브안과 4층 내부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그는 라식·라섹의 선도주자로서 정말 엄청나게 많은 수술을 하다가 2005년 노안수술이 등장한 것 역시 또 한 번 안과계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안과에서는 수십가지의 사전검사와 진료 등을 진행함으로 사전 준비 시간은 다소 길다. 하지만 실제로 수술을 받는 시간은 약 7~10분 남짓이다. 정말 짧은 순간에 인생이 바뀌는 셈이다. 그전에 엑시머레이저로 수술하던 시절에는 너무 아파하고 회복하는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런데 라식은 아프지도 않고 다음날부터 바로 잘 보이니까 환상적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 전에는 어떤 수술도 이런 게 없었다. 그런 감사와 찬사를 수술하고 난 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의사로서 엄청나게 보람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안과 백내장 수술에서 그런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고령화로 인한 노안과 백내장을 많이 앓고 있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안과지망생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레지던트를 마치면 안과전문의가 되어 그때부터 실전을 익히는데, 기술이 하루아침에 익혀지지는 않는다. 수술은 누구든 할 수는 있다. 다만 잘하는 것은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스마일라식수술을 하고 있는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스마일라식수술을 하고 있는 박영순 원장의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경험이 많을수록 몸이 말을 한다. 이 눈은 어떻게 수술해야 한다는 게 서 있다. 수술은 현미경을 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숨을 참으면서 해야 되고 섬세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발과 손이 섬세하게 움직여서 안전하게 수술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수술하고 발로 움직이는 게 복합적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안과수술은 도를 닦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오랜시간 수술을 하고 지내다 보면 성격이 많이 바뀐다. 차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된다. 안과수술을 하면서 얻어지는 성품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박영순 원장은 노안수술 시작 때부터 시작한 성악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연주회도 하며 무대에 섰는데, 긴장하고 떨려 가지고는 노래가 안된다. 자신은 안과 수술로써 다져진 경험과 내공이 도움이 돼 연주회에서 절대 떨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성악을 통해 마음껏 성량을 발산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안과 수술과 성악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2010년 자선음악회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2010년 자선음악회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그가 성악으로 노래하는 안과의사가 된지는 15년이 됐다. 노안 수술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되든 안되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했다. 그래서 다니는 교회에서 바리톤으로 특송을 하기도 하고 예술의 전당에서 자선 콘서트도 열었다. 

그러면서 박 원장은 꾸준함이 본인 삶의 버팀목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접지 않고 꾸준하게 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시력교정수술이고 노안수술이었다. 그는 초창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밝은 빛을 보기까지는 꾸준함이 항상 뒷받침이 됐다고 덧붙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안과 병원 게어드 아우파트병원장과 함께 찍은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제공)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안과 병원 게어드 아우파트병원장과 함께 찍은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제공)

아이러브안과는 안과쪽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박영순 원장이 쓴 논문이 유럽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이 되기도 하는 등 연구에 대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러브안과 상호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아이러브안과 상호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아이러브안과는 상호 자체에서 느껴지듯 눈을 사랑하는 박영순 원장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눈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낸 게 아이러브안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 원장은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은 눈을 더 사랑하게 되고 남에게도 더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며 죽으면 해부학교실에 ‘카데바(해부용시체)’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이야기했다.  

그런 그도 안과를 처음 선택했을 당시에는 답답함을 느끼던 시절도 있었다. 박 원장은 밖에서 뛰어다니고 해야 하는 체질인데 가만히 앉아서 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레지던트 마치고 수술을 하기 시작하니까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집중을 해야 하니까 수술을 하면서 스스로가 섬세하고 집중력이 생기는 쪽으로 변했다고 한다. 

박영순 원장이 진료 중인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박영순 원장이 진료 중인 모습 (사진=아이러브안과 제공)

지금은 수술로써 환자들의 불편한 눈을 좋아지게 하고 관리해주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며 수술을 무척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손끝을 통해 내일은 환자의 세상이 밝아질 것이기 때문에 늘 기대감에 시간을 보내고 있고 누구보다도 희망에 부풀어 살고 있다. 

이런 박 원장에게 좀 더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물었다. 그러자 '비전 2025'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즉 2025년도까지 보건복지부에서 인증하는 안과 전문병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박 원장이 더욱 건강하게 오랫동안 의사로서 살아가면서, 시력이 나쁜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수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박영순 원장 그는 사람들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는 멋진 조력자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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