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한미 판사, “다섯자녀 키우니 형제끼리 의지하고 지켜줘 든든”
[인터뷰] 신한미 판사, “다섯자녀 키우니 형제끼리 의지하고 지켜줘 든든”
  • 맹성규
  • 승인 2014.08.2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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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방법원 신한미 판사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전세금 급등으로 신혼 집 마련 부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결혼을 한다 해도 육아 부담 역시 만만치 않은 시대다.

아이 다섯을 키우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신한미 판사는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정부정책 중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이 보장된다면 아이를 모유수유로 키울 수 있고, 육아휴직이 끝난 후 워킹맘으로서 당당하게 사회에 복귀해 능력을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미 판사는 다섯 자녀를 모유수유로 키운 뒤, 워킹맘으로서 당당히 공직생활을 하게 된 과정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공개했다.

▲ 신한미 판사와 강인구 변호사 부부가 다섯 아이와 찍은 가족사진

 

- 공직생활하는 워킹맘으로서 정부의 출산 육아정책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스마트워크, 탄력근무제,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의 제도가 완벽히 보장되면 너무 좋을 것 같지만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일단 모든 직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법에 따라 보장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들을 많이 출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법원에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잘 보장됐기 때문이다. 처음 임관했던 2000년 초에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하면 호봉이나 승진 등에 있어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육아휴직 등을 챙길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점점 여자 판사 수가 늘어나면서 법원의 문화가 바뀌게 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불이익이 없어지게 됐다. 특히 모유수유를 오래 지속할 수 있으려면 육아휴직을 필수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하는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 결혼 전까지는 다산을 꿈꾸다가 결혼 후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현실만 생각하다 보면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성격이 현실적이지 못하고 애들을 워낙 좋아해 다섯까지 낳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애들을 많이 키우다보니 엄마가 일을 하려면 자녀가 많이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이 어릴 때는 주위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크고 나니 형제들끼리 의지가 되고 서로 지켜줘 내가 더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자녀가 하나인 엄마들 보다 시간 활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마다 자기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는 말도 있고 앞으로 사회보장제도가 발전해 직장어린이집, 육아휴직제도 등이 잘 마련되면 아이 키우기가 훨씬 좋아질 것 같다.

-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힘든 점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다섯 명 낳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집도 항상 시끌벅적 하다. 늘 누군가는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하고의 연속이다. 하지만 퇴근해서 문 열고 들어갔을 때 다섯 명의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다 없어진다. 온전히 나를 진심으로 반겨줄 사람이 다섯 명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든든하다.

▲ 신한미 판사와 강인구 변호사 부부가 다섯 아이와 찍은 가족사진

 


- 남편은 육아에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가요?

남편은 세세하게 아이들 기저귀를 갈아준다거나 밥을 떠먹여 준다든가 하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린이집 등ㆍ하교 길을 전담했다. 그리고 내가 주말에 일하러 사무실에 가게 되면 군말 없이 혼자서 다섯 명의 아이를 끌고 찜질방이나 놀이터에 데리고 가 놀아줬다. 지금도 급하게 낮에 아이들이 병원에 갈 일이 생기거나 할 때 픽업을 부탁하면 흔쾌히 들어준다. 남편은 운전할 때를 이용해 아이들과 소통을 하는 것 같아 그 시간을 좋아한다.

- 판사로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면?

서울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7년 근무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울가정법원에서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는 이혼사건이나 소년보호사건을 처리할 때 일반 민사나 형사사건처럼 판결만 하면 됐으나, 가사소년전문법관 제도가 생기면서 서울가정법원이 문제해결법원적 기능이 중시됐다. 그래서 이혼과정에서 소외된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게 됐고, 소년보호재판에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처음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서 가정법원의 변화과정에 한 몫을 담당했었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고 보람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재밌는 점은 아이들이 다양한 연령대에 있다 보니 이혼사건을 처리할 때 특히 자녀문제로 분쟁이 있는 사건에서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부부들이 많았다. 그런 사건들을 재판할 때는 우리 아이 얘기를 자연스럽게 들려주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서로 더 공감대를 잘 형성돼 원만하게 합의가 잘 이루어져 판결을 내리지 않아도 됐다. 결국 아이 많은 덕을 보게 된 것 같다.

△ 신한미 판사 프로필

- 2012. 2.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 2005. 2. 서울가정법원 가사소년전문법관
- 2003. 2. 의정부지방법원 판사
- 2002. 2. 전주지방법원 판사
- 2000. 2. 전주지방법원 예비판사
- 1997. 제39회 사법시험 합격
- 1992. 2.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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