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별쌤의 유물 이야기]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별난별쌤의 유물 이야기]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지태섭 기자
  • 승인 2021.06.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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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순수비 앞면
진흥왕 순수비 앞면
진흥왕 순수비 옆면
진흥왕 순수비 옆면
진흥왕 순수비 뒷면
진흥왕 순수비 뒷면

서울 용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곳 신라실에는 국보 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가 한켠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비석에는 재미있고,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삼국시대 때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가장 먼저 한강을 차지한 나라는 백제였지만 최종 승자는 신라의 진흥왕이었답니다.

진흥왕은 정복한 곳에 순수비(巡狩碑)를 세웠는데, 이제까지 발견된 순수비는 총 4개입니다.  창녕,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 순수비 중에서 아마도 진흥왕은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우고 가장 뿌듯해하지 않았을까요? 그토록 염원하던 한강을 차지하고 세웠으니까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북한산의 비봉 꼭대기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그 비석이 무학대사가 세운 비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명필가인 추사 김정희는 글씨체로도 유명했지만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한자를 해석하는 금석학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북한산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비석의 글자도 해석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김정희는 친구인 김정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을 향해 올라갔고, 드디어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마주합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만큼 비석의 머릿돌은 이미 없어져 버렸고,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희미해졌지만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짚으면서 해석을 해보던 김정희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맙니다. 무학대사가 세운 비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진흥왕’이라는 글자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살펴보고 세운 비석이라는 내용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얼마나 놀라고 기뻤을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이대로 그냥 해석만 해보고 넘기기엔 너무나도 엄청난 발견인 것이지요. 

그래서 김정희는 비석 옆면에 ‘이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병자년 7월에 김정희와 김경연이 와서 읽고, 경축년 6월 8일에 김정희와 조인영이 함께 와서 자세히 감정해 본 결과 남아 있는 글자는 예순여덟 자이다’라는 글자를 새겨 넣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정희는 더욱 유명해집니다. 현재 BTS가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BTS가 처음은 아니죠. 이미 오래전부터 한류 스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추사 김정희야말로 당시 조선의 한류 스타였습니다. 김정희 집 앞은 늘 김정희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청나라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뒷면에는 26발의 총탄 자국이 있습니다. 

6.25 전쟁 때 맞은 총탄 자국이며 심하게 훼손되었기에 1972년 8월 25일, 경복궁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에 전시된 것입니다.

유물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유물에 관심을 가지고 조용히 유물과 대화를 한다면 그 유물이 겪어온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진흥왕 순수비도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북한산 비봉에서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며 신라가 통일하고 또 멸망하며 고려, 조선이 건국되고 멸망하게 되는 그 모든 역사들을 다 지켜보고, 6.25 전쟁까지도 겪은 것이지요. 

여러분도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와 대화하러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에 가보실래요?

글 : 별난별쌤의 역사탐험 주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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