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약이 안 받는 사람, 한약을 못 먹는 사람, 한약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
[칼럼] 한약이 안 받는 사람, 한약을 못 먹는 사람, 한약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
  • 유경수 기자
  • 승인 2021.05.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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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형석 교수 (사진=경희의료원 제공)
김형석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교수

‘저는 한약을 먹으면 꼭 탈이 나요. 한약이 저에게 잘 맞지 않나 봐요.’ 진료실에서 이따금 듣는 얘기다.

그런데 그 환자분이 말씀하신 ‘한약’이란 과연 무엇을 말할까? 막상 자세히 문진해보면,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속이 안 좋았다던가, 한약방에서 달인 건강보조제를 먹고 설사를 했다던가, 어떤 한의원에서 한두 번 한약을 먹은 경험을 가지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약’의 범주는 너무나도 크다. 일전에 한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듯, ‘한약을 못 먹는다는 사람은 밥상 위에 올릴 게 없다. 심지어는 밥상조차도 물려야 한다.’라는 말이 이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지 않나 싶다.

통상적으로 음식으로도 쓰이는 도라지, 생강, 밤, 각종 나물, 심지어는 쌀마저도 동의보감의 처방 속에 빈번하게 포함되어 있다. 즉, 한약이란 것은 음식으로 매일 먹어도 안전할 만큼의 다양한 식재료부터 우리 몸에 강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마황, 대황, 부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약재들을 아우르는 것이다.

어떤 약이든 약효가 셀수록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도 커지며,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통해 한약을 처방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앞서 언급했던 그 환자의 ‘한약이 안 맞는다’는 것의 진위는 결국 특정 약재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오리고기를 못 먹는다고 해서 ‘나는 육류는 못 먹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과거의 안 좋았던 복약 경험에 대해 한의사에게 얘기하는 것은 무조건 진료에 도움이 된다. 어떤 증상으로 한약을 먹었는데 반응이 안 좋았다는 사실은 하나의 중요한 병력이 되며, 이를 참고하여 한의사는 해당 환자의 몸을 조금 더 진실에 가깝게 파악할 수 있다. 이로써 약효를 더 발휘할 가능성이 크며 더 안전한 한약 처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손목의 요골동맥에서 맥을 잡아 그 맥의 굵기를 보고 한약의 양을 조절하기도 한다. 맥관이 굵은 사람은 몸에 효과를 보기 위해서 더 많은 용량의 약재가 필요하고, 얇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양에도 효과나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이때에는 약의 용량을 줄이기도 한다. 또한, 약의 용량을 줄이고 늘임에 따라 약의 부작용이 효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한약은 그 특유의 맛 때문에 못 먹겠어요’ 필자의 한 지인은 오래전부터 술자리를 즐겨왔으나, 유독 와인만큼은 도무지 못 마시겠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함께 했던 식사 자리에서 진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달지 않아 좋다는 핑계 아닌 핑계와 함께 한 병을 뚝딱 비우는 모습에 지인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와인도 포도 품종과 숙성법에 따라 종류가 부지기수가 아닌가. 한약도 그러하다. 종류가 많을 뿐 아니라, 약재를 처리하는 방식(볶기, 찌기, 겉을 태우기, 보조재료 첨가 등)에 따라 그 성분에 변화가 생겨 약성이 변하기도 한다.

다만, 쓴맛이 유독 견디기 힘들다든지 신맛에 약하다든지 하는 성향을 미리 알려주면 진단에 도움이 되고, 꼭 필요한 약을 순탄하게 복용하기 위해 한약재의 용량과 구성을 조절할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 얘기도 듣는다. ‘변비를 오랜 기간 앓고 있는데, 한약을 먹으면 대장이 새까매진다고 절대 먹으면 안 된대요.’ 그러고선 먹지 말라는 게 무엇인가 봤더니, 평소 변비 해소를 위해 복용 중인 알로에였다. 알로에는 ‘노회(蘆薈)’라는 이름으로 한약재로 쓰인다. 아마 어디서 지나가듯 들은 얘기를 자초지종을 모른 채 환자에게 강하게 얘기하다 보니, 한의사로서 상황 설명에 애를 먹는 일이 적지 않다.

위에 예시로 든 한약에 대한 세 가지 오해 외에, 비용 문제 때문에 복약을 주저하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한약이라고 하면 대부분 비보험으로 처방되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보험이 되는 한약 제제도 있고 첩약에 대한 건강보험 시범사업도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진료 중의 상담을 통해 적절한 처방 방법 및 예상되는 필요 복약 기간에 대해 한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경희대한방병원 김형석 교수 프로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석·박사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정회원
-대한스포츠한의학회 정회원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정회원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재활의학과 임상조교수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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