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영 변호사의 법률창] 희귀질환과 산재
[윤미영 변호사의 법률창] 희귀질환과 산재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05.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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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영 경기도학교안전공제회 고문변호사
윤미영 경기도학교안전공제회 고문변호사

희귀질환이란 질환의 발병률이나 유병률이 매우 낮아 진단이 어렵고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희귀질환관리법이 정의하는 ‘희귀질환’이란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으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정한 질환을 말한다.

희귀질환은 조기진단이 어렵고 적절한 치료방법과 치료의약품이 개발되지 아니한 질환으로서 희귀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부족하여 희귀난치성질환의 예방 및 치료가 어렵다.

한편 직업성 질병의 경우 산재로 인정되려면 당해 질병이 업무로 인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인과관계에 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희귀질환의 경우에는 현대 의학상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학적 인과관계 입증이 매우 어렵다. 또한 근무 환경의 위험에 관한 정보는 사업장이 가지고 있는 반면 근로자는 위험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재해자가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다. 이에 재해자측이 업무와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판례를 보면,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직업병의 경우 근로자 측에 있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희귀질환은 현대 의학상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그 인과관계를 사후적으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또 기업이 수많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이나 교육 역시 불충분할 수 있다는 점도 반영했다.

최근 반도체 부품업체 종사자가 혈액암에 걸려 사망한 사건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혈액암의 한 종류인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사망한 재해자는 평소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이에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으나, 공단이 불승인 처분을 해 소송에 이르게 되었고 법원은 산재를 인정했다.

법원은 ①망인이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1일 최대 14.5시간의 근무를 지속하였으므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②개인보호구(호흡기보호구, 보호장갑, 보안경 등)가 지급되지 않아 노출 수준이 높았을 가능성도 있어 측정된 유해화학물질 수치가 노출 기준에 미달한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유해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점, ③망인은 이 사건 상병 발병 전 별다른 특이 질병력이 없었고, 기초 질환이나 가족력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음주와 흡연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전통적인 산업분야에서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다. 그러나 첨단산업분야에서는 작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이른바 ‘직업병’에 대한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첨단산업은 발전속도가 매우 빨라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빈번히 바뀌고 화학물질 그 자체나 작업방식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산업재해의 존부와 발생원인을 사후적으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사업장이 개별적인 화학물질의 사용에 관한 법령상 기준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작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화학물질에서 유해한 부산물이 나오고 근로자가 이러한 화학물질 등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어 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데, 이러한 위험을 미리 방지할 정도로 법령상 규제 기준이 마련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첨단산업분야의 경우 수많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이나 교육 역시 불충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참조)

이같이 근로자 측에 있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판례의 경향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발병의 원인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 희귀질환의 특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윤미영 변호사 프로필>
- 제5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수료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 역임
-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민사조정위원 역임
- 現 경기도학교안전공제회 고문변호사
- 現 서울특별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 現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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