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빛나라의 LAW칼럼] 이천 화재사고와 민·형사상 책임 강화 필요성
[오빛나라의 LAW칼럼] 이천 화재사고와 민·형사상 책임 강화 필요성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0.05.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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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빛나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오빛나라
오빛나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오빛나라

2008년 1월 7일 이천 냉동물류창고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4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쟁터가 따로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회자되었던 당시 사고는 그 때로부터 약 10년 전 부산에서 인부 27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을 당한 냉동창고 화재와 판박이라며 인재라고 지적받았다.

그리고 12년여가 지난 2020년 4월 29일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또 다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이천 물류창고 폭발 화재 사고는 지하 2층에서 지상 4층에 이르기까지 건물 전체에서 사망자가 발견되었고, 현재까지 사망자 38명, 실종자 4명, 부상자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혀졌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기소방재난본부,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은 합동감식을 벌여 사고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공사 현장 지하에서 우레탄 폼 작업과 용접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다가 우레탄 폼에 발포제를 첨가할 때 나온 유증기에 용접 불꽃이 튀어 폭발했고, 이로 인한 화재가 인근 가연성 소재에 옮겨 붙으며 폭발적 연소와 다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한 것이 유력한 사고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류창고의 외벽자재인 샌드위치 패널은 가연성 건축자재로 화재에 취약하고 유독가스도 많이 나오는 자재이기 때문에 이 역시 인명피해를 키우는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고용노동부, 국토부, 소방청 등 관계부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특별팀을 구성해 건설현장에서 화재 폭발 사고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개최해 유족과 사업주간 보상협의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산재신청 역시 가능함을 안내하고 있다. 이어 이천 물류창고 시공사가 건설 중인 물류, 냉동창고에 대한 특별감독과 전국의 물류, 냉동창고 건설현장에 대한 긴급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건설현장 화재사고 근절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 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등 가연성 건축 자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내부 단열재에 대한 화재성능기준 등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 나아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한다는 주장과 현행 민사 손해배상액 위자료 산정기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산업재해 사고 예방을 위해서 사업주의 민, 형사상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한다는 것이다.

산재 발생시 사업주의 민·형사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영업활동 과정에서 산재 사망 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이 부담하는 책임이 경미하므로 사람의 생명이 경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다소 투박하게 표현하자면, 시공사 등 기업 입장에서는 신속한 입주를 원하는 발주자의 요구에 따라 설정한 촉박한 준공일을 맞추지 못하면 매일 막대한 지체상금이 발생하지만,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산재보험급여를 공제하고 남은 일실이익 상당의 손해와 임원의 1년 연봉 남짓한 위자료, 그리고 많아 봐야 몇 백만 원 수준의 벌금 내지는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게 전부이다. 더군다나 준공기한을 맞추기 위해 병행하여서는 안 되는 작업을 병행하거나 속도만을 중시해 제대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채 위험한 작업을 강행하더라도 산재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이와 같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선택을 하게 될 유인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기업이 노동자에 대한 안전조치의무 이행을 포기함으로써 얻는 대가를 상쇄시킬 정도로 산재 사고에 대한 기업의 민, 형사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부터 영국의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해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 등을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국회에 입법 발의되었으나, 현재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은 중대한 주의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매출액의 크기에 따라서 상당한 비율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고, 상한이 없는 징벌적 벌금 부과까지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영국 양형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①매출액 5000만 파운드(약 755억원) 이상은 500만 파운드(약 75억원)부터 2000만 파운드(약 302억원)까지 ②매출액 1000만 파운드(약 151억원)에서 5000만 파운드(약 755억원) 사이는 200만 파운드(약 30억원)에서 750만파운드(약 113억원)까지 ③매출액 200만파운드(약 30억원) 이상 1000만파운드(약 151억원) 이하는 540만 파운드(약 81억원)에서 280만 파운드(약 42억)까지 ④매출액 200만 파운드(약 30억원) 이하는 30만 파운드(약 4억 5천만원)에서 80만 파운드(약 12억원)까지 범위 내에서 벌금을 부과한다.

또 관련 전과 등이 존재하는 경우나 안전을 희생하여 비용을 절감했을 때, 불법행위를 고의적으로 은폐했을 때, 법원명령을 위반한 경우, 건강이나 안전사항에 대한 기록이 부실할 때, 문서나 허가사항 등을 위조했을 때, 관계기관의 정당한 법적 요구에 불응한 경우, 취약계층 피해자를 악용한 때를 벌금 가중요소로 보는 한편, 이는 재량이므로 필요한 경우 가이드라인을 넘어선 벌금 부과도 가능하다고 한다.

“위험을 만드는 주체가 누구든 그 위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영국의 산업안전법의 대원칙이라고 한다.

필자가 2019년 11월 18일자 ‘산재 사망사고 손해배상 위자료, 과연 합당한가’라는 기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산업재해 사고로 인해 사망한 경우, 피해자의 위자료의 상한을 1억 원으로 산정하는 현행 기준 역시 수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형재난사고 내지 영리적 불법행위로 보아 2억 원 내지 3억 원을 위자료 기준금액으로 설정하고, 가중사유가 있을 때에는 4억 원 내지 6억 원까지 가중하되 일반 증액 역시 가능하다고 보아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고 실무에서도 적극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필요하다.

폭발사고, 화재사고에 따른 산재 사고는 이번 이천 물류창고 폭발사고 이전에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대형 폭발사고로 50여명에 가까운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까지 제대로 된 안전조치를 강구하지 않은 채 모두가 안이하게 방관한 것이 결국 사고가 재발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죽은 뒤에 약방문을 쓴다는 뜻으로 이미 때가 지난 후에 대책을 세우거나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이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와 닿는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현재로서 가장 빠른 때이기도 하다.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는 말에서 유래한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패 또는 실수를 해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다른 제2의, 제3의 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산재 예방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때이다.

 

<오빛나라 변호사 약력>
-現 오빛나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現 대한변협 인증 산재 전문 변호사
-現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자문위원
-現 한국여성변호사회 재무이사
-現 서울지방변호사회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 위원
-現 서울글로벌센터 자문위원
-現 수협 공제분쟁심의위원회 위원
-前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
-사법시험 54회 합격
-사법연수원 44기 수료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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