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청법 개정 촉구…“대상아동은 사회적 낙인, 처벌 아닌 보호 필요”
아청법 개정 촉구…“대상아동은 사회적 낙인, 처벌 아닌 보호 필요”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4.1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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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아동 ‘자발적 동의’에 대한 재해석 필요
대상아동·청소년’ 삭제하고 피해자 처우 실시해야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최근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의 개정 촉구 목소리가 거세다. 지난 3일, 국회 홈페이지에는 국민동의청원 글도 올라왔다. 현행 아청법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닌 처벌하기 위한 법’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청법 2조 7호·38조·39조·40조 관련 ▲‘대상아동·청소년’의 규정 ▲‘대상아동·청소년’의 수사·소년부 송치·보호처분 조항 삭제가 바로 그것.

아청법 개정 촉구 관련 국회 국민동의청원 화면. (출처=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아청법 개정 촉구 관련 국회 국민동의청원 화면. (출처=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현행 아청법은 관련 사건의 아동·청소년을 ‘피해아동·청소년’ 그리고 ‘대상아동·청소년’ 2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구분의 기준은 해당 아동이 성매매에 ‘자발적’으로 가담했는지 아닌지 여부다.

아동이 성착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대가성(선물·용돈·숙박·금품 등)이 확인된다면 그 사건은 성착취가 아닌 성매매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발적 성매매자’라고 판단된 이른바 ‘대상 아동’은 추후 ▲소년원 송치 ▲소년보호시설 감호 위탁 ▲보호관찰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비자발적 ‘피해 아동’으로 판단되면 국가의 보호 및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대상 아동으로 분류될 경우에는 성착취를 당한 피해자라 할지라도 변호사 선임·상담 및 치료 등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비슷한 또래의 절도·폭력·성매매 알선·성폭력 가해자들과 다르지 않은 ‘단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 ‘대상아동’ 낙인 처벌, 성착취 신고율 낮출 뿐

아청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민 단체들은 이 ‘아동의 자발적 의지’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설령 자발적 동의가 있었을지라도 미성년자인 아동의 의지라는 것이 성인의 자발성과 동일하게 판단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일반적인 경우, 가정 내 학대 또는 폭력에 따른 경제·심리적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던 아동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성착취 피해자인 미성년자가 변별력 미숙으로 성범죄 가해자에게 ‘그루밍’을 당한 것이라 해도 대가성이 보이면 아동에게 ‘자발성’을 부여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많은 시민·인권 단체들은 해당 법안을 ‘독소 조항’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성범죄자가 된 아동들은 결국 처벌이 무서워 신고를 꺼려하게 될 것이며, 성착취를 일삼은 진짜 성범죄자는 해당 상황을 악용해 범죄를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범죄자 양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빌미를 현행 법안이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아청법 개정 관련 간담회 현장. (출처=남인순 의원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아청법 개정 관련 간담회 현장. (출처=남인순 의원실)

◇ 아청법 개정 촉구, 각계 각층 한 목소리

아청법 개정 촉구 움직임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2016년 8월에는 남인순 의원이, 2017년 2월에는 김삼화 의원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후 2017년 6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각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당시 인권위는 앞선 두 법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며 아청법 상 ‘대상아동·청소년’ 규정을 ‘피해아동·청소년’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아동이 성매매 범죄의 피해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또 성매매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처분 규정을 삭제하고, 성매매 피해아동 대상 지원 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각계의 목소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1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속 계류 중인 아청법 개정안의 통과를 위해 ‘아청법 개정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아청법 공대위)’가 출범했다.

전국 시민·인권 단체 373곳이 결성한 단체인 아청법 공대위는, 결국 이달 5일 또다시 성명을 내고 해당 법 개정 촉구에 나섰다.

특히 공대위는 최근 발생한 텔레그램 N번방 문제 발생과 관련해서라도 조속히 아청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착취 피해자들이 그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본인들에게 가해질 또다른 피해가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울러 아동의 보호가 아닌 아동 처벌의 소지를 담은 아청법 규정이 N번방 피해자 상당수의 폭력을 지속·가중시켰다는 것이 공대위의 설명이다.

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아동 권리 단체들도 아청법 공대위 활동에 나섰다. 특히 N번방 사건과 관련해 ‘디지털 성착취 범죄자 처벌을 위한 법안’과 ‘아청법’ 개정은 20대 국회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과제임을 강조했다.

이 중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3월 27일 성명서를 발표해 아동·청소년·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및 불법촬영물 유포 범죄, 이른바 N번방 사건에 큰 유감을 표했다.

더욱이 성범죄 발생을 두고 성착취 피해자가 마치 범죄의 빌미를 제공한 것처럼 비난하는 그릇된 시각을 우려했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피해자 신고를 망설이는 주요인으로 작용해 더 큰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성착취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하는 이 같은 시각은 현행 아청법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성착취 피해를 당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고 ‘대상아동·청소년’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다.

자료제공=세이브더칠드런
자료제공=세이브더칠드런

◇ 국제법상 성적 학대 아동 ‘모두 피해자’

성인은 나이·육체적 힘·경제적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아동·청소년에 비해 우위에 있다.

미국·캐나다·스웨덴 등 많은 국가가 아동·청소년 성매매 문제에서 자발성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에서는 지난해 9월 열린 5·6차 심의를 통해 한국정부가 성매매 및 성적학대에 연관한 모든 아동을 ‘피해자’로 명시해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로 처우해야 한다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대책없는 처벌보다 피해 지원 및 교육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시각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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