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엄미영 칼럼] ‘디지털 성범죄’…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사회
[보건교사 엄미영 칼럼] ‘디지털 성범죄’…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사회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4.0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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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영 경기도 안산 보건교사
엄미영 경기도 안산 보건교사

과거, 언뜻 성인 여성을 따라한 듯 화장을 한 아동의 모습이 영상 매체에 노출된 적이 있다. 딸 가진 엄마로서 보는 내내 무척 불편한 마음이 드는 영상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같은 이유로 해당 영상을 지적했다.

반면 일부 사람들은 소녀가 예쁘게 화장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며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지나친 예민함이 괜한 불편함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 도로를 달리는 버스에는 속옷만 입고 누워있는 여성 모델 사진이 붙어있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음식 또는 술 광고에 여성의 몸을 상품처럼 이용하는 마케팅은 지금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돈을 벌고자 했던 사람들이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용한 방법은 바로 ‘섹슈얼리티’였다.

이렇듯 미디어화 된 ‘성산업’은 어느새인가부터 우리 생활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와 있다. 소녀에서 성인 여성에 이르기까지 성적 대상화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학창 시절 야한 잡지를 가진 남자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우상화 되듯, 일부 남성에게 ‘성’은 곧 ‘힘’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학생들은 교내의 한 여교사를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며 대중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카톡 대화방에 여자 신입생들의 사진을 올려 외모 품평 및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경우도 있었다.

여성을 소비하는 사회가 만든 그릇된 남성성이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 후 이들은 모두 법망을 피해 디지털 세상속으로, 그리고 급기야 텔레그램 N번방으로 자리를 옮기기에 이른다.

적게는 15만원, 많게는 150만원까지 입장료를 내고 대화방에 들어간 참여자들은 여성을 성노예로 만드는 데 적극 동조했다. 영상을 제작한 사람 역시, 여성을 갖은 방법으로 협박하며 온갖 성고문·신체부위 절단 등 차마 글로 다 적을 수 조차 없는 잔인한 행위를 시행하게 했다.

최근 해당 사건을 접한 여성들은 “내 몸이 고깃 덩어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극도의 수치심 및 불안감 마저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에서 특히 간과하면 안되는 것이 있다. 성매매·성폭력·성착취 환경에 가장 취약한 대상이 바로 10대 소녀들이라는 것이다.

10대 소녀들은 ▲또래 문화 중시 ▲성 관련 호기심 왕성 ▲사회 인식 및 경험 부족 ▲유흥 소비 중시 등의 문화적 특징을 가지게 된다. 성매매 등 성범죄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둘러싸여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을 주도하고 있는 대중매체는 어린 소녀들에게까지 ‘성적인 매력’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연예인에 대한 외적 찬사를 ‘인기’라고 생각하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사회는 아이들에게 더 예쁘게, 또 섹시하게 외모 가꾸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여성이 어른으로 진입하는 과정인 10대 시기를 성숙하게 보내지 못하도록 한다.

상대방을 성품과 신념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먼저 성적 상품의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취약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소녀들은 극단적으로는 ▲친구 또는 선배의 권유 ▲스마트폰 어플 등을 통해 손쉽게 성매매 현장에 진입하게 된다.

일례로 친구의 권유를 통해 성인남성들과 인터넷 화상 채팅을 시작한 중학생도 있었다. 몸캠 사진을 올리면 문화상품권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해당 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노출이 심한 사진을 요구받았으며, 반대로 그 사진은 다시 학생을 협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최근 발생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이 같은 유인 및 성폭력 범죄 방식이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화되고 변형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의 사랑과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사례가 대다수다.

특히 그루밍·돈·선물·사랑 등을 이용하며 소녀들에게 접근하기도 해, 성폭력을 당해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혹여 인식하게 되더라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해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현실은 ‘13세 미만 성폭력 의제강간’ 법에서도 나타난다.

아이가 13세 2개월만 돼도 서로 사랑했다거나 돈 또는 선물을 주고 받았다면, 사실상 ‘조건만남’에 해당돼 성폭력 처벌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성폭력 가해자인 어른이 소녀에게 무엇인가를 사주면 댓가를 지급했다는 이유로 그 소녀 역시 성매매를 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가 된 소녀들은 본인이 당한 성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쉽게 신고하지 못하게 된다.

미국·영국·호주·캐나다 등에서는 의제강간 연령을 16세로,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는 15세로 기준하고 있다. 의제강간 연령을 13세로 둔 OECD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이른바 비행청소년들은 처음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부모들은 내 아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평소 자녀의 외모에 대해 칭찬하기 보다 성품을 칭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미성년자 대상 고소득 조건의 취업 또는 구인광고를 의심해야 한다고 일러줘야 하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부모에게 이야기해 혹시 모를 위험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 ▲벗은 몸 사진 찍지 않기 ▲누군가 만나자고 할 때 만나지 않기 등 자칫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 주는 것도 매우 필요하다.

아울러 어떠한 이유에서건 성인이 청소년에게 금품 또는 이익을 제공하거나 음란 스팸메일·채팅 등을 통해 성매매를 유도한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반드시 일러줘야 한다.

관련 사실이 있을 경우에는 문자 또는 음성 등을 저장해 바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최근 아동성착취영상 178만개를 운영한 가해자가 징역 1년 6개월의 형량을 받은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아동성착취영상 다운로드에 대한 형량은 징역 15년이다.

특히 외국에서는 미성년자 성매매와 관련해 가해자만 처벌을 하고 있다. 이른바 ‘노르딕 모델’로도 불리우는 법이다.

최근 발생한 N번방 사건의 주범은 “소비자 욕구가 없다면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일을 벌이지 않는다”고 얘기한 바 있다. 성매매 공급은 수요가 있는 곳에서 생긴다는 말과도 같다.

모두가 여성을 인격체를 지닌, 그리고 성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조성된다면 성범죄 관련 수요 또는 공급은 사라지지 않을까.

딸들에게 가해지는 성적 욕망의 시선 대신 동등한 인격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희망해 본다. 아울러 이로 인해 사람을 사고 파는 성범죄가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엄미영 경기도 안산 보건교사 약력>

- 現 경기도 안산 보건교사

- 現 전국보건교사회 초등 부회장

- ‘학교에서의 성 인권’ 연구 활동

- 연합뉴스·한겨레신문·YTN·EBS다큐 프라임·새교육 내 성폭력 예방교육 사례

- 저서 <들샘 초등 보건교과서> · <학교속의 힐링캠프 보건교사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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