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좋은 무의식 만들어 주기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좋은 무의식 만들어 주기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0.03.2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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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 많이 혼나면서 컸습니다. 위로 7살 터울의 형이 있었는데, 형이 공부를 잘하고 바른생활을 하는 통에 비교되어 더 혼나곤 했죠.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동네 정육점 아줌마의 말처럼 내가 진짜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친자는 맞는 것 같았던 게 어머니께서 최면처럼 ‘너는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닮았어!’라는 말씀을 늘 하셨거든요.

어릴 때는 매일 다투시기만 하는 부모님의 장점이 뭔지 잘 몰랐고, 그래서 그 말이 좋은 말인지도 몰랐죠. 그런데 나중에 자라서 보니 저는 진짜 어머니와 아버지의 장점을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예쁜 외모와 피부, 강한 가족애, 아버지의 시계 같은 성실함과 빛나는 창의성. 이것은 제가 살아가는데 훌륭한 재능이 되었습니다.

예쁜(?) 외모와 독특한 아이디어로 개그맨으로서 남다른 입지를 다질 수 있었고, 결혼할 때는 저의 성실함이 아내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받은 항목이 되었죠. 강한 가족애는 갓 사귄 애인 같은 다정함으로 아내를 대하고, 엄마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의 부성애로 아이를 돌보며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 제게 한 말이 진심이었을 수도 있고, 응원의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믿게 되었다는 거죠. 좋은 점만 닮은 사람. 이것은 저의 긍정적인 성격에도 지대한 영향을 줬습니다. 저에게 좋은 무의식이 자리 잡은 거죠. 그래서 저의 가족에게도 이런 좋은 무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성인이기 때문에 새로운 무의식이 자리 잡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늘 저에 대한 무의식을 심어줍니다. ‘너는 역시 나 없으면 안 돼!’ 우리 아내에게 제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우리 아내는 기계를 잘 모릅니다. 기계류에 관심이 없다보니 기계이름을 잘 못 외워서 아직도 외장하드를 말할 때 “그…. 하얀 네모난 거”라고 합니다. 귀엽죠? 사람은 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 더 집중력을 보이잖아요. 그래서 우리 아내는 이런 기계적인 부분에 있어서 저에게 전적으로 의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없으면 안 되죠.

사실 결혼생활을 단지 사랑만으로 쭉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사랑도 주식그래프처럼 등락이 있죠. 그래서 사랑 그래프를 올릴 수 있는 외부 요인들이 있으면 좋습니다. 제 경우는 기계죠. 아내가 기계적으로 제게 도움을 받을 때마다 사랑 그래프는 반등을 합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닌데, 사랑까지 받을 수 있으니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내가 이런 기계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성장하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아내에게 제가 계속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그러면서 사랑도 계속 유지하고요. 어쩌면 저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일 수 있지만, 사랑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저만의 이익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저는 우리 딸에게도 늘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진짜 운이 좋아!”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말을 오히려 더 반복적으로 이야기해 줍니다.

지난 설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7살 딸이 중학생인 친척 오빠와 싸움놀이를 하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찧으면서 머리가 찢어졌습니다. 저는 살면서 사람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처음 목격했습니다. 7살 딸의 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나니까 정신이 멍해지더라고요. 일단 급한 대로 지혈을 하고, 피가 어느 정도 멈춘 후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명절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아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일부러 딸이 듣도록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리예는 진짜 운이 좋아! 어쩜 뒤통수가 다칠 수 있지? 얼굴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리고 봐봐. 응급실이 있는 병원도 집 근처에 두 개나 있었어. 그러고 보니, 내가 술도 안 마셔서 운전하고 올 수 있었던 거 아냐?! 대박이다! 리예는 진짜 복덩이라니까?”

딸은 딱히 리액션을 하지 않았지만 제 말을 잘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의사선생님이 상처부위를 보시고는 4바늘을 꿰매야 할 것 같다고 하시자, 딸이 무서워서 다시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만하죠. 저도 머리를 꿰맨다는 표현에 손이 떨렸으니까요. 하지만 수술을 위해 아이를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리예야, 너 지금 들었어? 넌 진짜 운이 좋다? 머리를 조금만 깎아도 된대! 아빠는 머리를 다 밀어야 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딱 그 부위만 깎으면 된대! 어쩜 이렇게 상처도 작게 날 수가 있지? 진짜 운이 좋다!”

그렇게 진정시켜 수술을 잘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리예가 걱정을 하는 겁니다. 당시 2주 후에 수영장을 가는 계획이 있었거든요. 오랜만에 놀러가는 거라 아주 기대가 컸는데, 여차하면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못할 상황이라 걱정됐던 거죠.

“리예야, 알지? 너는 운이 좋아서 딱 그때가 되면 머리 상처도 다 나을걸! 수영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딸은 제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이 현실이 될 수 있게 매일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드레싱하고 상태를 계속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호텔에 가기 4일전에 실밥을 풀었고, 무사히 수영장에 갈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들었습니다.

“역시 리예는 운이 좋아! 어떻게 이렇게 딱 맞춰서 다 나았지? 내일 신나게 수영만 하면 되겠다!”

제가 이렇게 딸에게 말은 했지만, 여러분은 이 상황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어요? 명절에 사리판단이 되는 중학교 오빠와 놀다가 머리가 찢어져서 4바늘이나 꿰매고 그 자리에 땜빵이 생길 수도 있는 여자아이요.

사실 운이 좋다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되는 거죠.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신은 운이 좋다고 믿으면 좋은 쪽으로 해석하게 되거든요. 진짜 좋은 일은 운이 좋은 일이고, 안 좋은 일도 더 안 좋은 일이 되지 않았으니 운이 좋은 거죠.

그런데 이렇게 무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도 그것을 확신을 가지고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도 안 믿는데 누굴 믿게 만들겠어요. 일단 본인이 먼저 믿으세요! 이렇게 쓰니까 종교적인 글 같네요. (웃음)

무의식은 우리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줍니다. 그런 중요한 무의식을 좋게 자리 잡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가족들에게 좋은 무의식을 심어주자고요.

 

<개그맨 이정수 프로필>
- 현) 네이버 칼럼니스트
- 현)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라행세) 출연
- 이리예 주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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