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로나19가 깨운 또 하나의 바이러스 ‘인종차별’
[기자수첩] 코로나19가 깨운 또 하나의 바이러스 ‘인종차별’
  • 최주연 기자
  • 승인 2020.03.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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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타임즈=최주연 기자]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금기’라는 사회적 합의 아래 인간 내면에 잠자고 있던 인종차별의 이기적 민낯이 다시 공포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국인 A양은 최근 하교 길에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에게 명치를 가격 당했다. 같이 길을 걷던 동양인 친구 역시 갑자기 나타난 이들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A양의 동급생인 한 중국인 학생도 ‘병든 년’이라는 욕설과 함께 뉴욕의 홈리스에게 난데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았고 또 다른 아시안계 시민이 뉴욕 지하철에서 테러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A양은 이러한 사건을 학교 측에 보고했지만 딱히 상황이 달라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맨해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동양인에게 쏠린 인종혐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보다 더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오늘 3월3일까지 37개국에 걸쳐 31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만들었다. 아시아지역에 국한 될 것만 같았던 코로나19가 최근 유럽, 특히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이태리에서 많은 사망자를 내며 확산됐고 ‘방역에 자신 있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국에서도 오늘 3일까지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코로나19의 진원지가 중국 우한이라는 이유로 미국뿐 아니라 유럽지역의 동양인 혐오는 더 거세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이 인종차별이란 사회적 금기에 면죄부를 주면서 공격성까지 띠게 된 것이다.

가깝고 유명한 인종차별 예로 손흥민 선수를 들 수 있다. 코로나19가 초기전파단계이던 지난달 초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침을 잠깐 했다. 그리고 그 이유 하나로 유럽인들에게 코로나와 엮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조롱과 야유를 받았다.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수퍼스타도 그 지경으로 모욕을 당하는데 일반인들의 피해는 짐작하기도 두렵다.

KLM이 기내 화장실에 붙여놓았던 한글 안내문
KLM이 기내 화장실에 붙여놓았던 한글 안내문

코로나 인종차별은 기업에 의해서도 이뤄졌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는 2월 초 비행기 화장실 문에 ‘승무원 전용 화장실’이란 한글 쪽지를 붙여놓아 우리 국민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결국 아시아지역 CEO가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퍼포먼스(?)로 이어졌지만 “이번 일이 왜 인종차별인지 모르겠다”는 CEO의 인터뷰 발언은 애초에 자신들의 문제가 뭔지 자각이 전혀 없다는 확인만 한 셈이 됐다.

사실 코로나로 인한 인종차별 문제는 굳이 먼 나라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최근 국민 청원과 야권 정치인들이 정부에 계속 요구하는 중국인 입국금지 문제도 앞서 해외사례로 든 동양인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코로나19는 중국인을 입국시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신천지라는 예측 못한 변수가 작용한 것이다. 지난달 18일 신천지 신도인 31번 환자가 나오면서부터 급속하게 증가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오늘 4812명에 달하고 이 중 신천지 대구교회 관련해 확진자수가 증폭된 대구경북 지역의 환자수는 4285명으로 전체 확진자수의 89%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27일 기준 발표한 통계를 보더라도 국내감염현황의 74.6%가 신천지 관련이었다.

입국금지는 감염병을 해결할 열쇠가 아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이탈리아는 서둘러 중국인들의 입국을 금지했지만 지금 상황은 이론적인 예상과 다르다. 오늘 3일 기준으로 사망자 52명에 확진자 2000명을 넘어서면서 오히려 유럽의 코로나19 진원지가 되어버렸다. 세계보건기구 WHO도 국경차단이 감염병 대응에 효과적인 조치가 아니라고 권고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감염병과 같은 공포와 위기의식은 인간 내면의 불안을 건드리고 심리적 회피작용으로 핑계거리를 찾게 된다. 이번 일에서는 인종문제가 희생양의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이 아니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와 ‘그들’로 편을 가른다. 그들로 인해 우리의 복지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막자고 했던 ‘우리’, 그러니까 지금 이 시점의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게 ‘그들’이 되었다. 총 87개국이 한국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코로나를 떠나 이슈마다 반복되는 인종차별 또는 제노포비아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정책적 노력과 개개인의 시민의식 향상도 필요하지만 대중매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현상을 부추길 수도 있고 약화시킬 수도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뿐만이 아니다. 유튜버나 SNS에서 활동하는 오피니언 리더들도 인권을 존중하는 새로운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할 것이다.

지난달 열린 UN인권이사회에서 미첼 바첼레트 최고대표는 “코로나19가 중국과 동아시아민족에 대한 편견의 물결을 일으켰다”며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우리 사회의 회복력에 대한 시험”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인권의 틀이 전염병 대응력을 높이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을 존중하는 상호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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