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스트레스 덜 받는 법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스트레스 덜 받는 법
  • 송지나 기자
  • 승인 2019.12.0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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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올해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쉽지 않으셨죠? 사는 게 쉬우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스트레스도 엄청 받으셨을 겁니다. 쉬운 세상살이가 아니니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스트레스 덜 받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이제 연말이니 내년에 한번 시도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적습니다.

먼저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십시오. 우리는 대부분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들으면서 자랐고, 늘 있어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보니 자신에 대해 과장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하게 평가하는 거죠.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2002년도에 우격다짐이라는 코너로 떴을 때 스스로를 개그천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영방송에서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반말개그를 만들었고, 신인으로서 거의 처음으로 홀로 무대 위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 개그가 대중의 호응을 크게 얻었죠. 그렇게 되니까 저는 그 상황이 제가 다 예견한 상황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마치 홈런타자가 상대 투수가 던지는 공을 예상하고 풀스윙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로에서 연기하기 시작하면서 제 자신의 실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연예인은 자신의 인기와 실력이 비례한다고 믿기 때문에 대학로 소극장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도 아주 잘 해낼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이 연기를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죠. 심지어 대화를 주고받는 법도 잘 몰랐습니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만 익숙해서 상대의 말도 잘 듣지 않고, 그에 따른 대화의 흐름도 못 만들어 갔습니다.

이쯤 되니 2002년 당시의 제 개그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잘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떠드는 쪽을 선택했고, 공영방송에서 반말로 개그를 하면 안 되는 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개그를 우연히 만들게 된 것이었습니다. 홈런타자가 홈런을 친 것이 아니라 평범한 타자가 우연히 휘두른 방망이에 공이 잘 맞았고 그게 홈런이 된 격인 거죠. 홈런을 치는 방법을 알고 홈런을 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홈런을 치는 방법을 모르니 다음번에 다시 홈런을 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제 자신에 대한 냉정한 객관화가 되고 났더니 그간 연기를 하고 싶은 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친한 주변 관계자들에 대한 분이 좀 내려가더라고요. 오히려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싫어하는 사람 중에 2등은 실력이 없는데 착한 사람이고,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실력도 없는데 착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전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중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아무튼 우리는 거의 자신의 능력보다 낮은 곳에서 일을 한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과분한 사람은 별로 없죠. 그리고 우리가 한 일에 대해 남들이 덜 알아줘서 열 받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니죠. 딱 그만큼 일을 한 겁니다. 누가 했어도 할 만큼의 일을 해놓고는 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겁니다.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자신이 그동안 감춰왔던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비밀을 상대에게 말해보세요. 그리 놀라지 않을 겁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우리의 약점을 감추면 상대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다 알고 있죠. 오히려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내게 해준 평가는 비교적 정확한 거죠. 그러니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나면 기대심리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자유추구입니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민족입니다.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 먼저 퇴근해서도 안 되고, 공연장에서 박수를 칠 때도 누군가 쳐줘야 같이 칩니다. 뭔가를 할 때 ‘해도 될까?’하는 마음의 경계가 늘 있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경계들을 살짝 넘어보는 거죠. 진짜 너무 퇴근하고 싶을 때, 상사가 자신의 눈치는 보지 말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 제일 먼저 일어나서 가보는 거죠. 그러다 안 좋은 인상이 박히면 어쩌나 걱정되신다고요? 그럼 사과하면 되죠.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부장님 말씀에 제 업무가 끝났다는 생각만하고 그냥 퇴근했습니다. 퇴근하고 보니 부장님께서 안 좋게 생각하셨을까봐 너무 걱정 됐습니다. 제가 부장님 퇴근하시는 것을 보고서 퇴근 했어야 하는데…. 저는 정말 눈치가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옛날 선배님들은 다 그렇게 했는데 저는 왜 선배님들의 깊은 뜻을 못 따라가는 걸까요?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럼 당연히 너털웃음으로 괜찮다 하시겠죠. 그런 상황에 “너 실수했어!”라고 정색하는 상사도 아주 흔치않습니다. 그리고 눈치 보며 2~3번째로 빠진 사람보다는 1번째로 빠진 사람이 더 정감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핵심은 경계를 ‘살짝’ 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도 될까? 싶은 헷갈리는 것들을 확 해보시라는 겁니다. 너무 휙 넘어가면 질타를 받을 수 있고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조금이라도 해보면 욕구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그것이 스트레스를 줄여줄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에너지 절약입니다. 전기, 수도를 아껴라! 이런 말이 아니고요. 감정적 에너지를 아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너무 진지합니다. 상대를 논리와 힘으로 제압하려고 하죠.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왜 당신은 남들이 다 해주는 것을 하지 않아?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내가 지금 이렇게 바쁜데 소파에만 누워있지 말고 눈치껏 일어나서 설거지든 애를 봐주던 해야 할 거 아냐? 당신만 피곤해?’ 이렇게 틀린 말이 하나 없게 공격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말의 목적만 놓고 본다면 이야기가 간단해 집니다.

“나 설거지 좀 해주면 안 될까~? 부탁해~ 나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구래~ 한번만~!”

이런 귀여운 부탁을 듣고 안 해줄 악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것이 논리로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이런 이성적 개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왜 내가 부탁을 해야 하지?’ 이런 고민자체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입니다. 논리로 굴복시킨 상대가 절대 기분 좋은 결과를 내놓을 리 없습니다. 논리보다는 부탁이 빠르고, 명령보다는 감동이 효과적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진짜 아무 날도 아니었습니다. 생일도 아니고 기념일, 그 흔한 무슨 14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마치고 집 현관문을 열었더니 우리 아내와 딸이 현관 앞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계속 문 앞에 서있었습니다.

이 이벤트는 우리 아내가 백화점에 갔다가 블루투스 앰프가 싸고 예뻐서 하나 사왔는데, 산 김에 둘이서 이벤트를 한 거였습니다. 아주 단순한 계기로 하게 된 이벤트였지만 저는 무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미 가족에게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지만, 앞으로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만약 우리 아내가 저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어서 저에게 ‘나한테 좀 더 잘해주면 안돼?’라고 했다면 저는 반발심이 생겨서 어떻게 더 잘 해주냐고 했을 겁니다. 전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아내는 현명한 이벤트 한방으로 그 모든 말을 대신 했고, 제 스스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겁니다.

이런 에너지 절약이 어디 있습니까? 이럴 때 또 ‘상대가 먼저 잘해야 나도 그렇게 해주지?’ 하는 이성의 개입은 역시 에너지낭비입니다. 더 잘난 사람이 베푸는 겁니다. 용서도 더 강한 사람이 해주는 거고요.

내년부터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관리해보시라고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지금 당장 실천해 보시는 것이 좋겠네요. 그래야 지금부터 더 행복해질 테니까요.

 

<개그맨 이정수 프로필>
- 현) 네이버 칼럼니스트
- 현)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라행세) 출연
- 이리예 주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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