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두기vs비켜주기' 혼란스런 임산부 배려석 매뉴얼
'비워두기vs비켜주기' 혼란스런 임산부 배려석 매뉴얼
  • 김은교 기자
  • 승인 2019.07.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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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 자발적 양보가 실현 목적
선택적 비켜주기, 갈등 유발 가능성 있어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두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비켜주는 것이 맞을까?

지난 8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9 전국 대학생 인구토론대회’ 4강에서는 최근 사회적 캠페인으로도 확산되고 있는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둬야 한다?’를 논제로 열띤 공방을 벌였다.

해당 이슈 관련해서는 연세대 ‘우리집 축구’팀이 찬성 입장을, 고려대 ‘별똥별’팀이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우리집 축구팀은 찬성 입장 기조연설을 통해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는 것이 아닌 비켜주기는 사회 구성원 간의 개인적, 집단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배려석 비워두기는 작은 충격에도 민감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임산부들의 특징이 반영된 효과적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입장을 전한 별똥별팀은 임산부 배려석을 선택적으로 비켜주는 것이 옳다는 주장과 두 가지 관련 논거를 제시했다.

먼저 “임산부 배려석을 항상 비워둬야 한다는 ‘의무감’은 양보를 전제로 실시하는 ‘자발적 배려심’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데에서 그 첫 번째 이유를 들었다.

덧붙여 “양보를 통한 자발적 배려가 임산부 배려석의 진정한 목적 실현임을 강조하며, 현재 부산광역시 지하철 내에서 시행하고 있는 ‘핑크라이트’ 등의 환경 시스템 조성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핑크라이트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승객이 임산부의 접근 유무를 확인하고 좌석을 양보할 수 있도록 기획된 설치 시스템이다. 열쇠고리 모양의 비콘을 소지한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으로 다가가면 좌석 옆에 부착된 분홍색 라이트가 켜질 수 있도록 제작됐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 관련 찬성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공감 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 관련 찬성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우리집 축구팀.

◇ 배려석 두드리는 임산부, 스트레스 부담

우리집 축구팀은 “‘비워두기’가 아닌 ‘비켜주기’의 기조로 임산부 배려석을 운영한다면 임산부들이 때마다 본인의 상태를 표현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반복적인 과정 자체가 임산부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 지하철에 탑승한 시민들은 배려의 마음으로 임산부에게 좌석을 양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초기 임산부의 구분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자리를 요청하는 임산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폭행 또는 폭언을 구사하는 소수의 사례가 실제 존재했다는 점이 임산부들에게 잠재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지하철 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지난 2016년 뉴스 보도도 해당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하철 한 칸에는 총12개의 교통약자 지정석과 7개의 교통약자 배려석이 존재한다. 그 7개의 배려석 중 2개 좌석이 임산부 배려석인데 해당 좌석은 임산부의 편의를 위해 자리 양 끝에 배치했다.

현재 서울시가 주장하고 있는 임산부 배려석의 기조는 ‘비워두기’다. 우리집 축구팀은 “지하철 내 교통약자 지정석의 비워두기 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했듯, 임산부 배려석도 비워두기 문화도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임산부의 이동안전권을 위해서는 약간의 강제성이 있더라도 임산부 보호를 위한 사회구성원들의 노력이 당위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 관련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별똥별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 관련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별똥별팀.

◇ 지하철 내 임산부 확률, 상대적으로 낮아

반면, 임산부 배려석은 비켜주기 방식을 통해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 별똥별팀은 현재 시행중인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의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는 것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전체 인구 중 임산부 비율은 0.87%이지만 임산부 배려석은 3.7%라는 통계를 언급하며, “지하철 내에서 임산부를 만나게 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핑크라이트와 같은 추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한정된 자리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또 “비워두기를 실시했을 때 폭력·폭언 등의 문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할 수 없다”며, “해당 사례들은 비워두기 혹은 비켜주기 방식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별똥별팀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은 강제성은 반드시 갈등을 유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임산부 배려석을 당연히 비워둬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평소 양보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좌석을 처음부터 비워둬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하지 못한다면, 강제성이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배려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배려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배려를 받는 사람도 존재한다. 별똥별팀은 이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임산부는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정부는 임산부를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 제도를 도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임산부석을 비워둔다면 그 두 자리는 임산부의 자리가 되지만, 배려라는 인식과 문화를 먼저 확산시킨다면 모든 자리가 잠재적인 임산부 배려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우리집 축구팀의 오정윤 학생은 “평소 임신·출산·결혼 등의 문제와 관련해 현재의 나와 거리감이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토론을 준비하면서 이 모든 것이 정말 내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또 “갈등이 많은 것은 결국 논의가 많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며 “지금의 논의가 더욱 좋은 사회로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갈등이라는 긍정적인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내가 결혼할 나이, 출산할 나이가 됐을 때는 사회에 좋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며 토론에 참여한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임산부 배려문화 확산을 독려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난 6월21일 여의도 역사 내에서 ‘임산부 배려 캠페인’을 시행한 바 있다. 당시 본 캠페인은 보건복지부·서울교통공사·KBS 아나운서 협회와 함께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대합실 및 열차 내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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