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칼럼] 밀레니엄급 유민의식과 슈퍼문
[김호중칼럼] 밀레니엄급 유민의식과 슈퍼문
  • 김복만
  • 승인 2018.03.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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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중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본부장

 

30년 전 군 생활 당시 3월초 폭설이 내렸다. 춘삼월에 내린 눈은 치우고 돌아서면 또 쌓이고 쌓였다.

전투화는 금세 젖었고, 더이상 마른 양말이 없어 젖은 양말을 쥐어 짰다. 그런 제설작업은 며칠간 반복됐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은 무게가 상당했다. 소나무에 쌓인 눈은 솔가지를 부러뜨렸고, 그 소리는 보초병들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며칠간 내린 눈은 가슴까지 쌓였다. 이 눈이 모두 녹으려면 5월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따뜻한 삼월 햇살은 겨울 잔재 백설들판을 며칠 만에 녹여버렸다. 자연의 변덕과 위대함이 제설작업의 피로를 압도했다.

고향에서 수백리 떨어진 남북대결의 최전선은 여러 가지가 갈라져 있었다. 최전방의 철책선이 모든 걸 갈랐다. 나라를 남북으로 갈랐고, 동해의 푸른 하늘, 동해바다마저 갈라 쳤다. 왜 우리는 민족이 분단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지, 직접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평화통일의 염원이 가능할까. 그당시 별별 생각을 30년 기억 속에서 꺼내 본다.

최근 남북 관계는 해빙기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최고위층이 올림픽을 참관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더니, 남한 특사들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전격적으로 만나 중요한 변화를 예고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촉즉발에 가깝게 말싸움하던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는 백악관으로 날아가 결국 4월에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됐다.

문제는 유민의식이다. 10년 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갔을 때 그곳에서는 우리 동포를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연변에서는 조선족이다. 남한 사람은 한국인, 북한 사람은 북한인 등 한민족은 벌써 사분오열된 정체성을 가졌다는 점을 인식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한 나라가 정치적으로 분열되면 위정자들은 자신의 정당성과 국론단결을 위해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조장하거나 이용했음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상식의 통치기술이었다.

과거 지금의 남과 북처럼 분열되지 않았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유민의식이 문제였다. 즉,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에 대한 향수로 각각 출신지역과 출생에 따라 유민의식을 표출했다.

지금도 ‘백제사람’이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는 게 놀랍다. 삼국통일이 서기 676년의 일이다. 1300년이 넘은 나라의 정서가 정체성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향후 남북통일의 거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 임진각 벽에 걸려 있는 통일 염원 태극기와 한반도기.

 


오매불망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에 익숙한 우리는 남북통일을 궂이 희망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더 자주 듣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10년간 남북경색의 분위기에다 분단 1세대가 초고령 상태에 이르면서 통일욕구나 희망은 굵지 못했다. 촛불정국과 그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다시 통일에 대한 염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개인 출생지가 관료등용의 문제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차별받았던 평안도 서북지방의 예가 있다. 접경지역이라 이민족과 교류가 많아 생긴 오해 탓인지 실제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가 됐다.

지금도 특정지역 출신을 뽑지 말라고 하는 일부 기업의 몰상식을 유리는 경험했다. 어긋난 우월의식과 차별의식의 뿌리는 이러한 유민의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결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리력과 경제력을 이용한 강제, 흡수식 통일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평화적 사회적 통일을 지향하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눈에 보이는 격차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의 차이를 극복하는 완전한 평화통일이 밀레니엄급 유민의식을 극복하는 첫발이다.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유민의식과 이로 인한 갈등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을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을 떠올려본다. 이들에게 어색한 만남은 잠깐이었다.

세계적 관심 속에 곧바로 아이스하키 본연의 투지와 전략에 몰입했다. 스위스, 스웨덴 등 아이스하키 강대국들과 맞서는 동안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선수들에게는 남과 북의 차이보다 강력한 상대를 이기기 위한 ‘합심’이 앞섰다.

이번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활동은 향후 통일을 대비하거나 통일 후 우리사회가 남북 유민의식에서 나오는 각종 차별의식과 부작용을 해소하는 모범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끼리 다툴 것인가 아니면 아이스하키라는 달을 모두가 보게 할 것인가. 결국 사회 지도층의 리더십과 분야별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게 올림픽이라는 슈퍼문이 통일공감이라는 결정적 슈팅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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