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완성된 부모, 준비된 부모’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완성된 부모, 준비된 부모’는 없습니다
  • 주선영
  • 승인 2013.06.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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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사랑
많은 부모가 우는 아이를 달래다 짜증이 나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막무가내로 보채는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부모는 ‘내가 참 부족하구나’란 생각을 한다. 아이에게 부모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은 아니까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고선 자신의 부족함을 원망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있지 않은가?

한편 많은 부모가 아이 앞에서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부모가 됐나 몰라.”라고 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내비치다가도 아이 앞에서는 누구보다 근엄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완벽한 부모의 모습으로 아이를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완성된 부모, 준비된 부모’는 없다. 사람은 부모가 된 순간부터 부모로서 성장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족하고 아직 미숙하지만 그런 모습을 인정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성숙해 나가는 게 오히려 어른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는 “이제부터는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못난 부분이 있어도 괜찮다’라며 부족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라며 “더 잘해 보려는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선 나를 지켜야 더 오래 나와 아이를 사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부모가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스스로에게 잘하려고 할 때, 아이도 자기를 사랑하고 더 발전하고 싶어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가까워서 더욱 모르는 내 아이 마음
생활을 같이하고, 가까운 사람이기에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에 대해 남이 모르는 부분을 많이 알고 있으니 내 아이를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가깝기에 잘 알 수도 있지만, 가까워서 모를 수도 있고 오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신의 마음속 소망을 통해 바라보곤 한다. 내 아이를 늘 보고 있지만 내가 보는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 그저 내가 바라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는 “아이 마음은 어쩌면 알 필요가 없다. 아이 마음을 몰라도 사랑할 수는 있기 때문”이라며 “중요한 것은 부모의 태도와 마음이다. 아이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고 기운 잃지 않게 격려하는 태도, 아이 생각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너 아침부터 기분이 왜 그래?”. 아이에게 쉽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 기분은 아이의 것이다. 찡그린 아이를 보니 부모의 마음이 언쩒아 진다고 아이의 기분을 바꿔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분은 결국 각자의 것이다.

“기분 안 좋아 보이네. (잠시) 내가 뭐 도와줄 게 있을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이의 기분이 계속 안 좋아도 이젠 아이 몫이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꾸중 보단 믿음을
아이가 어렵게 잘못을 고백했는데도 부모에게 된통 야단을 맞는 경우가 있다. 그다음부터 아이는 더 이상 부모에게 어떤 고백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간 것이다. 이제 부모는 영원히 자기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모른 채 착각 속에서 키우게 된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미래다. 지나간 과거의 잘못이 아니다. 책임을 묻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잘못의 이유가 중요하다. 부모는 아이가 말하기 시작하면 들어야 한다. 듣고, 원인을 찾아야 제대로 도울 수 있다.

“넌 대체 어떻게 된 애가”.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많은 부모가 행동이 아닌 인격을 공격한다. 아이는 방어하지 않을 수 없다. 방어하지 않으면 자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방어를 위해 엉뚱한 논리를 만들고 거짓을 지어내 변명을 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사실로 믿는다. 그렇게 변화에서 멀어져 간다.

모멸감을 주어 사람을 바굴 수는 없다. 기껏해야 움츠리게 만들 뿐이다. 오히려 억울하다 느끼게 해 자기 잘못도 못 보게 한다. 심하게 야단맞는 아이는 그저 야단맞은 것만 기억한다. 왜 야단맞았는지는 잊어버린다.

부모의 권위가 힘을 발휘하려면 수위 조절이 중요하다. 불안해서 아이를 몰아치면 결국 아이 마음에서 밀려난다.

“네가 무슨 일을 해도 아빠는 널 사랑한단다. 하지만 널 사랑하지, 네 모든 행동을 사랑하는 건 아냐. 오늘 네가 한 행동은 아빠가 좋아할 수 없는 행동이야. 내 아들인 네게 어울리는 행동도 아니고.”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잘못은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그렇지만 부모가 네 편이라는 것도 꼭 말해 줘야 한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라면, 게다가 아이가 어리다면 아침에 아이를 두고 나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냐며 마음 아파한다. 아이는 물론 힘들다. 하지만 엄마 자신이 이별이 힘들기에 그 마음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이와 영원히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헤어져 서로에게 필요한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이 역시 아이를 위한 것이다. 아이에겐 조금 힘든 순간이겠지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미묘하게 전달하는 미안한 감정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숨바꼭질 놀이는 이별에 대한 연습이다. 보이지 않지만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것, 헤어졌지만 다시 만난다는 것. 이 경험을 놀이를 통해 반복하며 아이는 두려움을 이겨 낸다. 아이는 헤어짐이 두렵다. 잠자기가 두렵고 유치원 가기가 두렵다. 어린아이와 잠시 떨어져야 할 일이 있다면 함께 숨바꼭질 놀이를 많이 해 보자.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는 걸 좀 더 잘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언제 갔다 언제 올지 여러 번 말해주자. 그 순간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더라도 미리 말하는 편이 낫다.

아이를 이해하는 것과 미안함은 다르다
부모는 아이가 슬퍼하면 불안해지면서 빨리 해결해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이가 감정을 깊이 느낄 때까지 기다려 주자. 감정을 충분히 경험해야 마음이 깊어진다. 감정을 두려워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메마른 감성의 아이가 되기 싶다. 타일 바닥같이 깔끔하지만 마음이 차가운 아이가 되기 쉽다.

아이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건 다르다. 부모가 생각하는 올바른 길도 아이는 힘들어할 수 있다. 그때 아이가 느끼는 괴로움에는 공감해 줘야 한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일, 부모가 고집을 부려야 할 일도 있다. 부모의 마음이 자칫 약해지면서 그 틈새로 아이가 파고든다. 한없이 아이가 안쓰럽지만 내 자리를 지키는 것도 부모의 일이다.

그러니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자. 죄책감도 안 된다. 미안한은 내 표정과 눈빛으로 아이에게 전달된다. 미안해할 것 없다. 부모는 할 만큼 했다면 당당하자.


참고자료:<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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