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마을 버스와 함께 떠난 여행(2017.봄)
[정경석의 길] 마을 버스와 함께 떠난 여행(2017.봄)
  • 송지숙
  • 승인 2017.03.2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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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제한속도 시속 60km로 서울의 종로 일부 구간을 쳇바퀴처럼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본 여행가 임택씨는 평생 직장생활과 가정을 지켰던 자신의 입장과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잔존 수명이 6개월 정도 남은 마을버스를 구입해 ‘은수’라는 이름의 날개를 달고 677일간의 긴 일정으로 세계 일주에 성공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제한속도를 벗어나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기계적인 고장과 예상하지 못했던 여행의 수많은 난관을 이겨낸 그는 현재 장애가 있어 홀로 여행하기 힘든 젊은이들이 건강한 젊은이와 함께 떠날 수 있는 여행장학금을 지급하는 뜻 깊은 일을 하고 있다.

2017년 2월, 2050세대들이 함께 여행하며 공감을 나누는 남도와 제주여행에 같이 하자는 임택씨의 제안에 두말도 하지 않고 승락했다.

나 또한 걷기를 좋아하는 여행가로서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지난해 봄에 직장 은퇴 후 스페인의 산티아고 까미노 순례길 800km를 한 달간 걷고 느낀 벅찬 감동을 담은 여행기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를 펴내고는
무언가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던 참이었다.

통장에 7만원 현금과 카메라 하나를 들고 떠나 세계의 구석구석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 주며 그들이 베푸는 호의로 세계를 일주한 청년, 터키에서부터 아프리카의 모로코까지 배낭에 태극기를 꽂고 약 5,500km를 걸은 도보여행가, 한국을 알리고파 한복을 입고 세계여행을 다닌 대학생, 교편을 잡다가 사표를 내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 당찬 아가씨, 시인과 도예가, 그리고 아로마 테라피스트도 참여한 보름 동안의 남도와 제주 마을버스 여행은 세계 구석 구석에서 겪었던 여행 에피소드들의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고 모두 또 다른 여행에 대한 꿈을 나누었다.

 


우리의 이번 여행은 무계획을 원칙으로 했다. 모두가 이런 예측하지 못하는 여행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미리 틀이 마련된 일정보다 커다란 틀만 잡고 떠나는 여행은 떠나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가족들이 버선발로 뛰어 나와 말리겠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게 늘 계획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면서도 원만하게 흘러가는 것을 생각할 때 결코 무모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여행자들에게 관대한 편이다. 우리의 이번 여행이 그랬다.

외딴 섬에서 들어가 먹을 것을 살만한 곳이 없을 때 마을 주민이 도와주어 풍족한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었고, 늘 사이버상으로만 만나던 일행의 SNS 친구가 자기 고장에 찾아 왔다고 자신의 농장에 초대해 감귤농사를 체험하게 해주고 융숭한 대접을 해주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수확한 쌀을 나누어 주었지만 가지고 다닐 형편이 안되어 불우한 이웃에 기부하기로 했다.

우리가 생활에 쪼들리는 여행자들은 아니지만 특별히 우리를 초청한 지방단체에서 숙박이 제공되지 않는 한 늘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배낭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고, 마을회관이나 지인의 별장, 교회 다목적실, 때로는 저녁을 사 먹은 식당의 넓은 방에서 방석을 깔고 침낭을 덮고 자는 경험을 했다.

누군가 탱고는 스텝이 꼬여야 춤을 추는 맛이 난다고 했듯이 여행은 틀에서 벗어날 때 즐거움이 있다.

가는 곳마다 낯선 여행자들과 어울렸다. 혼자 다니는 배낭 여행자들과 만나 숙소에서 식사를 같이 만들어 먹으며 어울렸고 그들은 우리와 같이 있고 싶어 하루를 더 체류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의 숙소에 현지에서 만난 SNS 친구를 초대해 밤새 여행의 즐거움을 얘기하고 때로는 식당에서 만난 외국여행자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한국의 정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어 멀리 캐나다에서 일부러 날아오기도 했고, 어떤 젊은이는 군대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일정에 합류하기도 했다.

 


저녁마다 숙소에서 자신들의 세계 여행경험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며 여행을 통한 자아성찰을 이루어가는 과정과 그들의 비전을 공유하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 좋아하는 이는 모든 일정의 모습이 담긴 감성사진을 촬영하여 매번 우리를 놀라게 했고 요리를 좋아하는 이들은 저녁마다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했다.

아로마 테라피스트는 여행의 고단함을 향기로 치료하고, 시인은 시를 낭독했으며, 노래를 좋아하는 이는 늘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편안한 울타리 안에서 살던 젊은이들로부터 배낭 하나 메고 홀로 떠나 세계의 어느 한 구석에서 하루 몇 천 원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현지인들과 어울려 지낸 경험담과 “여행은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자신감 가득한 이야기를 들으며 안이했던 나의 젊은 세월을 후회하기도 했다.

비록 세대는 달라도 여행에 대한 공감은 같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은 언제나 우리에게 꿀과 같이 달콤한 이야기의 메뉴였다.

여행을 떠나는 방법은 통상 남들이 마련해 준대로 떠나는 패키지여행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는 자유여행이 있다.

패키지여행은 편한 교통수단과 숙박이 포함된 안전이라는
‘보험’이 있지만 자유여행은 늘 다음 목적지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또 어디서 하룻밤을 지낼 것을 생각하며 불확실성을 즐기는 도전적인 ‘모험’이 있다.

전자의 여행 소감은 “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왔어”이고 후자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을 겪었어”일 것이다. 진정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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