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칼럼] 아동학대 트라우마 대물림 된다
[김영화칼럼] 아동학대 트라우마 대물림 된다
  • 송지나 기자
  • 승인 2016.01.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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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화 강동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영화 강동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지난해 12월 이후로 학대당한 어린이들에 대한 충격적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어린 아들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해 냉동 보관해온 끔찍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리고 어떤 부모들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식을 이토록 학대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십오년 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아동병원(Primary Childrens Medical Center)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소아정신과’란 진료 분야도 생소하던 시절이라 저는 소아정신과병동에 많은 어린이들이 입원해 있는 사실이 무척 의아하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아이들이 대부분 가정에서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란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은 2014년 9월 이후 시행된 ‘아동학대범죄특례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가해자 처벌이 엄중해졌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아동학대 범죄가 발견되면 가해자 처벌은 물론이고 아동과 가해자를 분리시킵니다.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 영구격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친권을 박탈하고 위탁가정에 입양시킵니다. 그리고 심각한 트라우마가 의심되는 피해 아동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때리고, 잘 먹이거나 가르치지 않고, 심지어는 성적인 학대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2014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서는 아동학대 가해자의 81.8%가 부모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전년도에 비해 학대 신고도 36%나 증가했습니다. 아동학대 주범은 부모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태도와 양육기술 미숙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금지옥엽으로 꽃으로라도 때리지 않고 사랑으로 길러야 할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트라우마로 남는 부모의 말 한마디 

‘너는 아주 나쁜 아이야’ 어린 시절 지나치게 간섭하고 항상 핀잔주는 엄마의 영향으로 자신의 행동에 눈치보며 자란 A는 결혼 후 자신의 자녀를 자신이 부모에게 배운 똑같은 태도로 양육했습니다. 아이가 눈을 깜빡거리는 틱 증상을 보여 병원을 찾기까지 자신의 비판적인 태도가 아이에게 불안을 일으킨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로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아버지의 외도로 늘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딸 B는 엄마의 신세타령과 함께 남자에 대한 적대감을 가슴에 품고 자랐습니다. 자신은 부부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결혼 후에는 남편의 작은 실수에도 지나치게 화를 내게 되었습니다. 

결국 남편과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B의 아이는 부모의 싸움에 주눅 들어 있다가 급기야 밤에 귀신이 보인다는 공포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우울할 때 아이들은? 

C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후 친척집에 보내졌습니다. 몇 년 뒤에 다시 엄마와 지내게 되었지만 일하는 엄마에게 혼자 지내기 무섭다는 투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또 다시 버리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C는 결혼 후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가 학교에서 받은 정서행동발달검사에서 우울증으로 판정받을 때까지 자신에게도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과거 기억에 사로잡혀 우울해하고, 아이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면 아이와 원활한 감정소통이 안돼 아이는 자신감 없고 무기력한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괜찮아 넌 나쁜 아이가 아니야” 이런 생각은 부모가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 치료의 시작은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신의 과거 아픈 경험과 육아를 분리시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어떻게요? 부모자격 시험을 치룰 순 없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부모가 자신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잘못된 양육방식 때문에 내 아이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자각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본인이 받은 학대 트라우마가 대물림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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