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칼럼] 폭력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비법
[김호중칼럼] 폭력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비법
  • 온라인팀
  • 승인 2015.12.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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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중 시민옴부즈맨공동체 공동대표

 

조선대학교 의전원 폭력를 통해 바라본 자화상 

최근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에게 학교 징계위원회는 제적의결을 내렸다. 이 학생은 동료 여학생을 장시간 감금하고 폭행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녹음해 SNS에 게재했다가 사회적 파문으로 크게 이어졌다. 법원은 가해자가 제적처분을 받지 않도록 벌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결과는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두둔했다며 여론을 들끓게 했다. 학교측은 결국 징계위원회를 열어 제적을 결정했고, 재입학까지 불허하는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해자 친구들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가해자 친구들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위로나 가해자를 꾸짖는 말보다 피해자 때문에 가해자가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게 지성의 요람인 상아탑에서 나올 일인가? 이들에게 오로지 의사의 길만 보일뿐 정의는 없어 보인다. 가해자 스스로 반성하며 백배사죄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동료의식'을 보면 참담할 뿐이다.


이는 지극히 남성중심의 사고에서 출발한 것이다. 누구나 귀한 자식이다. 딸이라고 덜 귀하고 아들이므로 절대적으로 귀한 자식일까? 이 사건은 폭력피해자에 대한 남성적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면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04년도 밀양지역 고등학생 115명이 울산에 사는 최모양 자매 등을 밀양으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 구타, 공갈협박, 강도, 강간을 자행한 사건과 닮아 있다. 일부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촬영해 발설할 경우 유포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의 악행은 협박에 머물지 않고 인터넷에 게재해 국제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더 큰 문제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일부 가해자와 그 부모들은 오히려 피해자 신상을 공개해 2차 가해에 나섰고, 경찰 태도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경찰은 여경으로 수사관을 바꿔달라는 피해자 요구를 무시했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이어 경찰관들은 노래방에서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가 노래방 도우미들에 의해 폭로되기까지 했다. 가해자 및 공범자 115명 중 3명만 10개월 형을 받았다. 

조선대 의전원 사건과 밀양사건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여전히 남성 가해자에게 너그러웠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빼닮았다. 두 사건은 약 10년 터울을 두고 발생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게 사법당국의 핵심 책무이지만 힘 있고 돈 있는 가해자의 편에 서있는 것 또한 닮아 있다. 게다가 피해자들의 숨죽인 고통이 공개되면서 결국 여론이 정의감을 되살리는 기폭제였던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실낱처럼 기대하는 것이 정의여선 안된다. 기본이 정의여야 한다. 이 정의는 판결로 구현되기도 하지만, 국민 여론이 양팔저울의 무게중심을 바로잡기도 한다.

문제는 여론이 나설 때면 이미 피해자는 피해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라는 점이다. 힘과 권력에 의해 부당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피해자의 고통의 소리가 억눌려 가슴에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런 사건 본질을 흐리는 비법이 있다. SNS 폐해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미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SNS로도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분위기면 사람을 두 번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노하우가 기본이 된다면 이미 죽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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