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하나님이 주는 위로(慰勞)와 사람의 위로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6-08-28     임지영 기자
변요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린도후서 1:5)

갓 태어난 원숭이 새끼 앞에 어미 인형 둘을 놓았습니다. 하나는 철사를 엮어 만든 어미인데, 딱딱하고 차가웠지만 가슴에 젖병이 달려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부드러운 천을 씌운 따뜻한 어미인데, 먹을 것은 없었습니다.

새끼는 배가 고프면 철사 어미에게 가서 젖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먹고 나면 곧장 천 어미에게 돌아와 매달렸습니다. 하루 열일곱 시간 넘게 그 품에 붙어 있었습니다. 무서운 인형을 우리에 넣었을 때도 도망치며 달려간 곳은 젖을 준 쪽이 아니라 품을 준 쪽이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해리 할로 교수는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새끼 원숭이는 젖으로만 살 수 없고 어미 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듬어 주는 품, 위로를 주는 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원숭이만 이러하겠습니까? 사람은 더하지 않을까요?

오늘 머리글은 바로 그런 위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로’(慰勞)는 한자로 위로할 위(慰), 일할 로(勞)입니다. 그리고 위(慰)는 벼슬 위(尉)와 마음 심(心)이 합쳐졌고, 로(勞)는 등불 형(熒)과 힘력(力)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즉, ‘위로’(慰勞)는 벼슬 있는 사람이 백성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위로하다’는 ‘나함’(נחם)인데, 단순히 슬픔을 달래주는 것을 넘어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주어 영혼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돕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위로’는 ‘파라클레시스’(παρακλησις)인데, ‘곁에서 부르다’는 뜻으로 ‘파라클레토스’인 ‘보혜사’ 성령과 어원이 같습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공감을 넘어 변화와 회복을 가져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위로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장 5절 전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여기서 ‘고난이 넘친다’고 할 때, ‘넘친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내 그릇에 다 담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고린도후서 1:8)이라고 했습니다. 즉, 자기 힘으로 이겨낼 수도 없고, 수습할 수도 없고, 견뎌낼 재간도 없을 정도의 심한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사람들이 ‘힘내세요. 당신은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위로하면 물론 힘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위로 이상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고린도후서 1:5)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이 성도들을 박해할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사도행전 9:3~4)

분명히 사울이 박해한 것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성도)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박해를 당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난당할 때 주님인 예수님께서 함께 고난을 당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신다고 해서 그 고난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라지지도 않고 약해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린도후서 1:5). 한 마디로 고난을 넘치게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 또한 넘치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위로는 어떤 위로일까요?

먼저 히브리서 4장 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15)처럼, 고난을 아시는 분이 주시는 위로입니다.

두 번째는 로마서 8장 32절 말씀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 8:32) 이는 죽음 너머까지 이어지는 위로입니다.

세상의 위로는 죽음 앞에서 말을 잃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무덤 앞에서는 멈춥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위로는 바로 그 무덤 저편에서부터 옵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위로는 어떤 형편에서도 바닥이 나지 않는다 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주여! 이곳에 함께 한 모든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환우들을 처음 만드셨던 것처럼 깨끗하게 완치시켜 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