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헌 옷’ 벗고 ‘새 옷’을 입은 삶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6-08-18     임지영 기자
변요한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 하시기로”(스가랴 3:3~4)

오늘 머리글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가나안 입성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여기의 여호수아는 B.C. 538년 고레스 칙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돼 돌아올 때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호사닥으로, B.C. 587년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때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천사)는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이르는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예수님의 인준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옷은 누구나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스트 드레서’(Best dress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가는 장소와 만나는 대상의 성격에 따라 옷을 적절하게 잘 입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벤저민 프랭클린은 ‘먹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되 입는 것은 남을 위해서 입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전 귀족들이나 양반들은 ‘의관’(衣冠)을 갖추어야 한다며, 보이는 곳이나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절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옷이 인격이나 직업이나, 현재의 상태를 잘 표현해주기 때문에 개성대로 입을 수는 있지만 아무렇게나 입어서는 안 되는 사회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무슨 옷을 어떻게 입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신앙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옷을 벗기시기도 하지만 입히시기도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어 치마로 입고 있었을 때(창세기 3:7),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고”(창세기 3:21), 모세에게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출애굽기 28:2) 입히라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마태복음 6:30)처럼, 우리 삶 깊숙이 간섭해 주셔서 세세하게 입히십니다. 우리가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요한계시록 19:8)와 같이 천국과 그곳에서 입는 옷까지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 선택된 우리는 새 옷을 입기 전에 반드시 헌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과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더러운 옷은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러운’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초임’인데 이 단어는 ‘가장 간악하고 혐오스러운 성격의 더러움을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단어 중 가장 강력한 표현의 단어로. ‘인간들의 죄가 얼마나 더러우면 이런 표현’을 사용했겠습니까? 그래서 은혜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2~24)

바울이 에베소 교회들에 이렇게 말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 당시 에베소 지역은 이방 문화가 강력했고 굉장하게 큰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곳에 살던 그리스도인들도 그 문화에 부딪히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더러운 옷’을 다시 입지 말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전 삶은 어떠한 삶이었을까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에베소서 4:18) 이는 그들에게 지식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무지했던 것입니다.

무지한 사람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고집이 셉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 당시 ‘애굽’의 왕 ‘바로’이지요. 그는 그 고집 때문에 열 가지 재앙으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고 그것도 부족하여 ‘홍해’에서 몰살되었습니다. 이처럼 ‘목’이 굳으면 뇌출혈이 올 수 있고 마음이 굳으면 ‘동맥 경화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로마서 1:21) 죄를 짓고도, 사람을 죽이고도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이는 자신을 방탕에 ‘방임’시켜 버렸기 때문에, 더러운 욕심에 따라가며 오히려 ‘죄’를 정당화시켜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이를 ‘상실한 마음’이라고 하고 바울은 이들을 향해 ‘하나님의 생명이 떠났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살아 있다고 보기 어려운 죽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에베소서 4:20)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과거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 아름다운 새 옷을 입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계절의 옷을 바꾸고 있습니다. 폭염과 폭우로 어려움을 겪은 분들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인도하신 바를 따르며 주님 뜻을 이루는 데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