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다비드상과 ‘버린 돌’ 예수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이사야 53:2)
16세기 이탈리아의 조각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걸작품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높이가 5.17m이며, 1501년부터 1504년 6월 8일까지 제작한 대리석상인 ‘다비드(David)상’을 최대 걸작품으로 꼽는 분이 많습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카라라(Carrara) 지역에서 온 5.5m의 거대한 대리석인데, 미켈란젤로가 작ㄹ품을 만들기 40년 전에 두 명의 조각가 아고스티노 디 두치오(Agostino di Duccio)와 안토니오 로셀리노(Antonio Rossellino)가 이미 포기한 돌이었습니다. 돌이 너무 가늘고 높았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미세한 구멍과 결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첫 번째 조각가는 발 부분만 조금 건드리다 포기했고, 두 번째 조각가는 돌의 질이 너무 나쁘다며 처음부터 손도 대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그래서 이 돌은 피렌체 대성당 작업장에 ‘일 지간테’(l Gigante) ‘거인’이라고 불리며, 25년 넘게 비바람 속에 방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피렌체시 당국은 이 애물단지 같은 돌을 처리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에게 자문을 구했으나, 대부분 이 돌의 결함 때문에 걸작이 나오기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26세의 젊은 미켈란젤로는 달랐습니다. 이 돌 안에서 거대한 영웅 다윗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2년이 넘는 시간 공을 들여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했고, 불완전한 대리석을 완벽한 예술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1504년 다비드상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죽어 있던 돌이 살아났다’고 감탄했습니다.
이 다비드상은 단순히 예술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 이전의 예술가들이 다윗을 묘사할 때, 대부분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전쟁 영웅의 모습이었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왼쪽 어깨에 물매가 걸쳐 있고 오른손에는 돌이 감추어져 있는, 골리앗과 싸우러 가기 전 긴장감과 결의에 찬 다윗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단순히 전사가 아니라 이성과 의지로 자신의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르네상스의 인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16세기 초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심장부였고,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국가 중 하나로, ‘메디치’(Medici) 가문과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 속에 있다가 1494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추방되면서 ‘피렌체 공화국’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던 배경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생 피렌체 공화국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독립을 지키려는 약자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골리앗과 싸움을 앞둔 다윗의 모습이 강자들 앞에 선 피렌체의 저항과 자율성을 보여주고, 또 로마 교황청을 향한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비드상은 르네상스의 시대정신과 피렌체 공화국의 자부심을 표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쓸모없는 돌이라고 버려졌던 거대한 대리석이었지만, 미켈란젤로는 그 속에서 시대를 뚫고 나오는 위대한 영웅 다윗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을 가리켜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베드로전서 2:7) 즉, 그 당시 최고의 성경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과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성 밖으로 버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메시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가를 오늘 머리글 이사야 53장 2절 말씀으로 기록합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no beauty) 풍채도 없은즉(no majesty)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애타는 탄식이 ‘싯딤 나무’를 상기하게 합니다.
싯딤 나무는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 밑에서 성막을 건립할 때, 기본 재료로 사용된 ‘조각 목’입니다.(출애굽기 25:2~9) 이 ‘조각 목’은 이집트, 중동, 이스라엘 광야에 서식하는 ‘아카시아 나무’로 히브리어로 ‘싯딤’(Shittim)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넣은 법궤를 왜 나무의 왕으로 불리는 ‘백향목’이 아니라 광야의 모진 풍파에 힘겹게 자라는 싯딤나무로 만들었을까요?
이는 싯딤나무가 광야에서 목재로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나무였기 때문이고, 동시에 싯딤나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성물(聖物)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잘 것 없고, 약한 것을 들어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웅변하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존재이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의 기초이자 완성으로 쓰신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돌과 같은 존재인 우리를 귀한 모퉁이의 머릿돌처럼 만들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