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잊힘’ 공포와 하나님의 기억하심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희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이사야 49:16)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Ebbinghaus’ Forgetting Curve)은 19세기 독일의 심리학자인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인간의 망각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한 학설입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학습한 뒤 10분이 지나면서 망각이 시작되고, 20분이 지나면서 처음 기억의 42%가 잊히고 58%로만 머릿속에 남으며, 1시간이 지나면 처음 기억의 44%만 남고, 하루가 지나면 33.7%만 남으면, 6일이 지나면 75%를 잊어버리고 한 달 후에는 79%를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하나의 가설이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특히 현대 뇌과학자에 의하면 어렵게 기억된 것은 쉽게 잊힌다고 합니다. 또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기억과 관련된 것들은 쉽게 잊히고, 잊었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되는 것도 있습니다.
어머니들이 출산의 고통을 잊기 때문에 둘째도 낳을 수 있고 셋째도 낳을 수 있는 것처럼, 힘들었던 순간을 잊을 수 있기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잊을 수 있기에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도 있어 어쩌면 ‘인간의 망각’이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잊힘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잊힌다면, 즉 사회적 죽음이라면 더 아프지요.
누군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의 첫 감정이 어떠한지 적은 글을 보았습니다. 병원에 들어갈 때는 그냥 들어갔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고 병원을 나섰을 때는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고 합니다.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오고 한없이 슬프더랍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갈 텐데, 나는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이 드니 한없이 슬퍼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왜 두려워할까요? 죽음의 과정에서 느낄 고통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큰 이유가 있지요. 그것은 ‘잊힘’에 대한 공포입니다.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고 나의 존재가 우주 안에서 완전히 삭제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잊힘에 믿는 사람들의 두려움은 예레미야 3장 1~6절과 시편 77편 7~9절 중 시편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시편 77:7~8).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끔찍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딱 그러했습니다. 1년 정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몇십 년 정도 버틸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70년이 지났습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면 두 세대가 지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시편 77:9) 했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믿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치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친절하지 않으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적 고립’입니다. 이를 시편 22편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편 22:1~2)
그런데 오늘 머리글 말씀 바로 앞 이사야 49장 14~15절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4~15)
이어서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이사야 49:1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새겼다’는 히브리어 원어로 ‘차카크’(ק[chaqaq])인데,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손은 부활하신 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영광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한 강도가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누가복음 23:42) 했던 것과 느헤미야가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헤미야 13:31)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해 주시사 우리와 항상 동행해 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이들의 기도 가운데 에바다 은혜로 열리고 풀리고 해결되고 뚫리는 역사가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