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형통(亨通)’의 진정한 의미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세기 50:21)
형통하기를 원하십니까? 함께 한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하심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형통’(亨通)이란 ‘모든 일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되어 가는 것’을 뜻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만사형통(萬事亨通)’ 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도 ‘온갖 일이 자신이 뜻한 대로 잘되고 번영한다’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형통’이라는 말에는 ‘목적한 바를 이룬다’라는 ‘성공’의 의미도 함께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의 개념 역시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히브리어로 ‘형통’은 ‘찰레아흐’라고 하는데, 이 말 역시 ‘번성하는’(prosperous), ‘성공적인’(successful)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형통’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람이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은 뒤, 형들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빠지고 급기야 형들에 의해 애굽에서 노예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갔고, 다시 애굽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팔려 그의 집에서 종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37장과 39장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가 종이 된 그 상황에서 창세기 39장 3절에 보면 ‘형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형통’입니까? 그리고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원하니”(창세기 39:7) “요셉이 거절하며”(창세기 39:8)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창세기 39:20). 요셉이 애굽왕 시위대장의 아내를 유혹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창세기 39장 23절에 보면, 감옥에 갇힌 요셉에 대해 ‘형통’이라는 말이 다시 나오고 그것도 “범사에 형통”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형통’의 뜻으로 이야기한 ‘사전적 의미’나 ‘성경적 의미’에서 ‘형통’과는 다른 뜻이 아닐까요?
여호수아 1장 7절~8절에서도 연이어 ‘형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사망으로 두려워 떠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약속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형통’의 약속을 받은 여호수아가 이후 전쟁 없이 평안했습니까? 가만히 있어도 승리했습니까? 삶이 평탄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여리고 성이라는 철옹성을 무너뜨렸는데도, 그보다 너무나 작은 ‘아이성 전투’에서는 무참하게 져서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꿰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날이 저물도록”(여호수아 7:6) 큰 슬픔을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형통’은 단지 우리의 형편과 생각에 맞추어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실패한 일 같지만, 실패가 아니고, 우리가 보기에 성공한 일 같지만, 성공이 아닌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요셉과 여호수아의 ‘형통’에는 같은 의미로 들어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으로”(창세기 39:3, 2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여호수아 3:7, 7:10)입니다.
요셉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뿌리치며 한 말이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세기 39:9)처럼, 우리도 요셉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일에도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을까요? 먼저 오늘 머리글 말씀 바로 전에 나오는 창세기 50장 20절을 보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세기 45:5) ‘생명을 구해주시려고’ ‘생명을 구원하시려고’입니다.
두 번째는 오늘 말씀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크게 축복하시려고 한 사람을 먼저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요셉이라”(시편 105:17)
이처럼, 축복도 은혜도 흘려보내야 더 채워지고 열심히 나누면 감동과 기쁨이 함께 흐르게 되고, 나에게 있는 축복이 배가 되며, 실제로 크고 좋은 복을 더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부어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렸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것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부르신 뜻대로 ‘축복의 통로’ 되길 소망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