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약한 믿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세기 18:14)
오늘 머리글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첫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창세기 17:17)
그러나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창세기 17:19) 여기서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삭’(יִצְחָק, Yitschaq)은 ‘그가 웃다’(he laughs)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어떠했을까요?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창세기 18:12) 이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왜 웃느냐”(창세기 18:13)고 굳이 물으셨고, 이에 사라가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창세기 18:15)라고 부인하자 하나님께서 “아니라 네가 웃었다”(창세기 18:15)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 창세기 21장 2절을 보면 이삭이 태어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어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세기 21:6) 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창세기 17:19)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의 나이를 생각하며 웃었던 웃음은 포기와 절망과 심지어 비웃음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또한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웃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며 사라가 얼굴 가득히 웃었던 웃음은 진정 기쁨과 행복과 감사의 웃음이었습니다. 다시 오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세기 18:14)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일도 경이로운 일이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엘 샤다이 전능자이시고 그럴만한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경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내 생각의 울타리 속에 가두어 두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즉 하나님을 내 생각, 우리의 울타리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우상 숭배자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닙니다.
창세기 18장 15절에서 사라가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부인하자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가 웃었다”(창 18:15)라고 한 것에 대해 다시 묵상이 되었습니다. 사라는 장막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속으로만 웃었는데, 하나님께서 다 아셨습니다.
사라가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한 이 말은 단순한 거짓말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 두려움에 자신도 모르게 ‘내가 웃지 않았습니다’라고 부인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진정으로 한번 만나본 사람은 기쁨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반드시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거룩하시고 그만큼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한 것은 사라를 무너뜨리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사실을 외면하지도 아니하시고 우리의 연약함도 덮어두려고 하지 않으시고 동시에 하나님은 그 사실로 약속을 거두지도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엘 샤다이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히 믿을 때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의 두려움과 흔들림 한가운데서도 당신의 일을 계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라의 ‘부인’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주시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우리의 결단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위로로 끝나는 말씀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포기한 것은, 현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이상 기준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소망합니다.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새 일을 행하여 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사울은 바울로, 시몬은 베드로로 이름이 바꾸어 쓰임을 받았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늘 평안하고 승리하게 해 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