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받은 은혜와 감사 훈련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6-01-05     임지영 기자
변요한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누가복음 17:19)

은혜를 누리는 최고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감사’입니다.

로버트 에먼스(Robert Emmons) 교수가 발표한 ‘감사 일기 시험’에 의하면, 의도적으로 감사 일기를 쓰지 않은 그룹에서는 감사의 내용이 10~15% 정도였지만, 불평과 불만의 내용은 35~40%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부정적 편향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서도 ‘사람들은’ 긍정적 사건보다 부정적 사건을 2.5배에서 3배 더 강함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심리 실험에서도 실험 참가자들이 1주일 동안 상호작용 분석 결과 감사를 표현한 비율이 대화의 15% 내외였고 불평, 비판, 부정적 언급이 대화의 35~40%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여 감사 대 불평의 비율이 1:3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감사 훈련을 하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불평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감사하지 못할까요? 심리학자들은 그 첫 번째 이유가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때문이라 했고, 두 번째는 ‘비교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며, 세 번째는 ‘내가 이것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권리 의식’(Entitlement)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을 통하여 살펴본 ‘사람이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로마서 1:21)처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둘째는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누가복음 12:19)처럼, 교만한 ‘자기 중심성’ 자기 중독, 자아 중독, 나르시시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포함된 누가복음 17장 11~19절까지 말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열 명의 나병(한센병) 환자 이야기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은혜를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완성 시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감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이 생각이 납니다. 그는 43세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내 육안을 어둡게 하심으로 주님만을 뵐 수 있는 심안을 열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며 시력을 잃은 대신 영의 눈으로 글을 썼고, 그 눈으로 ‘실낙원’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어떠합니까? 혹시 떠올리기 싫은 상처나 실패, 후회로 가득 차 있습니까? 그러나 ‘감사’라는 렌즈로 우리의 과거를 다시 해석해 보십시오. 그 아픔이 있었기에 우리는 더욱 겸손해졌고, 그 실패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할 수 있었으며, 그 눈물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열 명의 나병(한센병) 환자는 모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홉 명은 그저 기뻐하며 율법적으로 제사장에게 보여야 하기에(레위기 14:2) 제사장에게로 달려갔고,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누가복음 17:15)

오늘날도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에는 관심이 있지만,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기에, 지극히 조건적이며 상대적이므로 무엇인가 주어지면 감사하고 주어지지 않으면 불평합니다.

‘무엇에’ 감사하느냐는 질문보다 ‘누구에게’ 감사하느냐? 라는 질문이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누가복음 17:16) 그렇습니다. 그는 즉각 자신의 몸의 변화를 보면서 예수님께 찾아와 발아래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감사하니’로 번역된 헬라어 ‘유카리스톤’(εὐχαριστῶν)은 ‘좋다. 은혜’를 뜻하는 ‘유’(εὖ)와 ‘은혜, 기쁨’을 뜻하는 ‘카리스’(χάρις)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감정은 ‘은혜에 대한, 자연스럽고 기쁨에 찬 반응’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병(한센병)을 치료받은 사마리아인은 완전히 회복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주어진 은혜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것이며, 그것도 ‘큰소리로’ ‘온몸과 마음을 다한 역동적이고 표현적인 감사’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3)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에서 “구원하였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세소켄’(σέσωκέν)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나았다는 의미를 넘어서 전인적인 구원, 영적인 구원을 받게 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감사가 역경을 이겨내는 힘, 즉 회복 탄력성을 길러주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점을 찾는 훈련이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재해석 능력을 키워 스트레스 상황에 더 잘 대처하고 좌절로부터 빠르게 회복하도록 돕는다는 것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