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위대한 승리자들의 인내(忍耐)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5-08-26     임지영 기자
변요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세기 6:3)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신앙 위인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이 믿음으로 살았던 가운데 중요한 공통적 덕목을 가진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오랜 세월을 인내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노아의 경우를 살펴보면,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세기 5:32)는 말씀에 이어 나오는 오늘 머리글에서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한 뜻은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심판하시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뜻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홍수로 심판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은 결단코 짧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노아는 힘들게 방주를 만들면서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고생스러운 일을 맡기셨을까? 심판하실 것이면, 좀 빨리하고 끝내시면 안 되나?’라고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었는데, 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6장 3절과 8절에서 “그러나”가 나옵니다. 이는 죄로 인하여 바로 죽어야 하지만, “그러나” 은혜를 베푸셔서 돌이킬 시간을 주시겠다는 것이며, 120년이라는 해석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회개’의 시간을 그만큼 주셨다는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의 수명이 120세 이내로 줄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후손의 족보에서 보여주듯이 타락 이후에도 인간은 천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린 죄로 인해 사람은 그 수명의 단축을 자초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1000년이 아니라 ‘영생’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란에 머물고 있던 아브람(아브라함의 옛 이름)이 75세 때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고 했습니다.

이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창세기 12:2)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성취는 아내 사라가 경수가 끊어진 지 오랜 기간이 지났고, 아브라함도 기력이 쇠약해지고 쇠약해졌던,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25년 후인 아브라함 나이 100세가 되었을 때 아들 이삭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윗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급히 도망갈 때, 베냐민 지파 사람 시므이가 나타나서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중략)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사무엘하 16:7~8)고 저주하고 또 “그를(다윗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저주했습니다.(사무엘하 16:13)

이에 옆에 서 있던 당대에 기라성(綺羅-星,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이라는 뜻의 일본 한자 조어(造語)에서 ‘성’이 붙어 우리나라 식으로 변형된 말) 같은 다윗의 충성스러운 용사들이 분노하여 ‘왕이여, 명령만 하옵소서. 단칼에 저놈의 목을 베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아니다. 그가 나를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것이다”(사무엘하 16:10)라고 말하며 참고 모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후 다윗이 적군을 다 물리치고 왕궁으로 개선할 때, 이때도 시므이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지난번과 다르게 자신의 잘못을 구하고 생명을 구걸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다윗은 인내하며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인격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래 참음으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울로 불릴 당시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이 사람(사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사도행전 9:15) 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그리고 자신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에서 10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보내야 했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유대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다른지를 깨닫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며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누가복음 9:23)처럼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습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