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국가 수치와 노예근성·식민지 근성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5-06-18     임지영 기자
변요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여호수아 5:9)

‘애굽의 수치’란 무엇일까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졌던 치욕적인 삶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경험이 있지요.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주권을 잃고 일본제국과 강제로 병합조약을 맺은 ‘경술국치’(庚戌國恥) 말입니다.

그 수치의 상처가 그만큼 크기에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던 세대도 여전히 모든 면에서 ‘일본에는 질 수 없다’라는 마음이 깔려있지요. 특히 축구는 더욱 심하고요.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을 때는 그래도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애굽의 왕 바로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최하층민, 노예로 살게 되었고, 출애굽기에 나오지만, 노예는 짐승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인구가 2백만명에 가까웠던 것처럼, 출산율과 생존율이 높았기 때문에 이에 위기를 느낀 애굽왕 바로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아이들은 살려 그들의 종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수백 년 동안 매 맞고 조롱당하고, 멸시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왜입니까? 나라가 없으니까? 땅이 없으니까? 그러했습니다. 해외에서 살거나, 살아보신 분들은 그 느낌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이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내 조국이 아니기 때문에 받는 냉대와 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애굽의 수치가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출애굽기 16:2~3)처럼, ‘노예근성’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그들은 배급을 받아서 먹던 시절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주인공 앤디는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장기수들이 있는 감옥,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 되었지만,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탈출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높은 담벼락과 철통같은 경계가 그를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쇼생크에 오래 살다 보니, 그곳에 익숙해지고 적응되어 자유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게 되고 오히려 감옥 생활이 자신의 삶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거기다 브룩스라는 동료 죄수가 무기징역 형을 받고 50년을 감옥에서 지냈는데, 가석방 날이 다가오자 다른 죄수들을 칼로 위협하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감옥에서 나가기가 두려워 감옥에 남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브룩스는 석방이 되어 사회에 나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소식까지 접했습니다.

그러나 앤디는 끝까지 자유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납니다.

이 영화의 원제가 ‘쇼생크 구원’(Shawsank Redemption)이고, 쇼생크는 ‘애굽의 왕, 바로의 이름’이며, 제목을 의역하면 ‘애굽으로부터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은 ‘쇼생크 감옥’ 같은 곳입니다. 비록 노예의 삶이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것은 보장받은 곳이 애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자유를 얻었지만, 광야의 삶이 너무나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툭하면 ‘애굽에서 사는 게 낫겠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겠다’라고 하며 불평을 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잘 안 될 거야. 우리는 실패할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는 두려움, 그리고 자발적이지 못하고 늘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삶과 리더십을 신뢰하지 못하고 늘 의심하는 마음과 자세가 아주 뿌리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 가운데는 이러한 ‘수치’가 없을까요?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성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전 모습과 똑같이, 아니 더욱 심해져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의와 정의를 우리 뜻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불순종으로 살면서도 그것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