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존귀(尊貴)한 사람의 조건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이사야 32:8)
‘존귀(尊貴, nobility)’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는 지위와 신분이 높고 귀함을 말하며, ‘영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보드’(דובכ)와 ‘존귀’를 의미하는 ‘하다르’(וְ֝הָדָר)를 ‘인간의 속성이 아니라 왕에게 속한 것’(시 21:5)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시편 29:1) ‘위엄’(시편 29:4)으로 번역되기도 한 것처럼, 신앙적 의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동식물이나 물질과 다르게 만든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창조하고 식물, 동물 순으로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인간에게 동물과 달리 세 가지 특권을 주어 ‘존귀한 자’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영생의 특권’이며, 두 번째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이고, 세 번째가 ‘만물을 다스리며 살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범죄함으로써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에,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교제권도 상실해 버렸기에, 오히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물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귀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럼에도 독일의 철학자로 무신론자인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신은 인간적인 소원의 산물’이라고 했고, 공산주의자 카를 마르크스는 ‘신은 압제 상태의 대체물’이라 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신은 억눌린 욕망의 투사’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면 마치 인간이 존귀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것처럼 말합니다.
대표적인 물질주의 종교인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가 인류를 구원하는 절대 선이므로 그것을 반대하는 반대 세력을 ‘절대 악’으로 부르며, 절대 선을 위해서 절대 악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주장합니다.
1917년 레닌이 러시아를 장악한 이후 오늘날까지 약 1세기 동안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살육의 역사를 집대성한 ‘공산주의 흑서’, 프랑스 역사학자 11명이 공동 집필한 책을 보면 ‘하나님은 없다’라고 멸시하며 모든 것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죽인 사람 수가 무려 약 1억 명이 가깝다고 합니다.
이를 나라별로는 중국에서 6500만명, 소련에서 2000만명, 북한에서 200만명, 캄보디아에서 200만명, 아프리카에서 170만명, 아프가니스탄에서 150만명, 베트남에서 100만명, 콩고에서 100만명, 남미에서 15만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살육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들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에서 기독교는 반드시 척결해야 하는 ‘절대 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사무엘상 2:30) 하셨고, 신명기 5장 10절과 출애굽기 20장 6절에서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명기 5:10, 출애굽기 20:6) 하셨습니다. 또 오늘 머리글 말씀 이사야 32장 8절에서는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세상이 너무 좋아 세상의 기쁨에 취해 살았던 저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고 부르시며 ‘네가 너를 지었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이사야 43:1)고 하시며 세상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찬사는 멀어져가고 오히려 힘듦과 어려움, 무엇보다 이것저것 고려하다 보니 ‘리스크(Risk)’에 빠른 결정을 하지 못함에서 오는 문제점만 부각되었습니다.
이에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이사야 43:2) 하셨는데, ‘과연 이것이 맞습니까?’라고 하소연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성과주의’에 빠져 기쁨을 누리고 살 때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목표의식’에 빠져 철두철미하고 완벽에 가까운 일 처리 덕분으로 세상 가운데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늘 외로웠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부터 ‘관용’도 배우고 새로운 ‘인내’도 배우며 행복하고 더욱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이들 가운데 복에 복을 더해 주시고 축복하셔서 기도하고 간구한 것뿐 아니라 여호와 이레로 예비하신 모든 축복을 다 받아 ‘존귀한 자’로 쓰임 받게 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