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률] 산재 치료 중 극단적 선택…보험 적용 대상될까

2025-05-26     송지나 기자
배성재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주인공 이병구(신하균 분)는 어렸을 때, 광부였던 아버지가 탄광이 무너지는 사고로 한쪽 팔을 잃는다. 한쪽 팔을 잃은 이병구의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듯 난동을 부리다가 넘어졌고, 조그만 장식용 우산의 끝부분이 머리에 박혀 사망한다. 영화에서 이병구의 아버지는 사고사했으나, 만일 영화와 달리 탄광 붕괴 사고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면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이 될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법’) 제37조 제2항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6조에 따르면 ①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②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③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자해행위로 인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산재보험 적용 대상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며, 자살한 근로자의 내성적 성격이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만으로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대법원 2016두58840 판결)

이러한 법리를 바탕으로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있는 질병 또는 사고로 치료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을 때, 이를 산재보험 적용 대상으로 본 사례는 아래와 같다.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던 A는 진폐증으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①A가 오랜 투병생활로 인하여 과격한 언어나 행동을 보임과 동시에 판단력 및 기억력이 저하됐던 사실 ②A가 사망하기 2년 전부터는 일상생활에 항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던 사실 ③사망 15일 전부터는 극심한 고통으로 괴성을 지르거나 침대 모서리나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던 사실을 볼 때 광부로 일해서 발생한 진폐증이 A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인 이상 상태로 몰아넣어 죽음에 이르렀다고 봤다.(대법원 93누13797 판결)

B는 2007년부터 생산직 근로자로 근무를 시작했고, 2009년 필름 커팅 작업을 수행하던 중 손가락 6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B는 손가락 절단 사고에 대해 산재보험이 적용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치료로 인한 통증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며 조울증을 진단받았다. B는 손가락 절단 사고로 인한 치료가 끝난 후에도 조울증으로 인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2014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대법원은 ①B에게 사고와 치료 과정 외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없었던 점 ②B가 사고 전까지 정신질환을 진단받거나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 ③사고 당시 만 27세였던 B의 입장에서 사고 자체만으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B가 사고로 인하여 치료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조울증이 발병했고 그로 인하여 합리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봤다.(대법원 2016두57502 판결)

C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 등을 산재로 인정받았다. C는 50대에 이르러 욕창으로 여러 차례 수술 및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추가로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C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누워 있는 자세를 바꿀 수 없어 욕창이 재발하기 쉬운 상태였는데, C의 배우자가 40일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 C를 돌봐줄 사람이 없자 C의 욕창이 재발했다. C의 배우자가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C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①C가 일하다 추락하여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하반신 마비로 인한 욕창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우울증이 발생했던 점 ②죽음 직전 욕창이 재발하여 우울증이 급격히 유발 및 악화됐던 점을 종합하여 C가 하반신 마비, 욕창, 우울증 등으로 정상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봤다.(대법원 2021두34275 판결)

즉, 여러 판결을 종합하면 근로자가 일하다가 얻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하여 치료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경우 업무상 질병과 사고로 인하여 우울장애 등이 발생했고 그로 인하여 정신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 상태가 악화되어 이러한 선택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어야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요양 중 자살한 근로자가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된 경우가 있다.

광부로 일하던 E는 1991년 진폐증 진단을 받고 2003년부터 진폐증으로 치료를 받았다. E는 진폐증 및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발생한 호흡곤란 때문에 2010년경 수면 장애를, 2013년에는 우울장애를 진단받았다. E는 사망하기 6개월 전부터 호흡곤란을 이유로 수차례 응급실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E의 사망 1개월 전 항생제 장기 투여 시 발생하는 균에 감염되어 격리 상태로 치료를 받았으나 격리로 인하여 우울장애가 급격히 악화되어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했다.

퇴원 직후 E는 호흡곤란이 재발하여 병원에 입원하고자 하였으나 과거 균 감염 이력으로 인하여 격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요청에 자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E가 장기간 진폐증 및 합병증으로 발생한 호흡곤란이 심해지는 등 신체적 기능이 악화된 상태에서, 수면장애 및 우울장애가 격리치료로 인하여 극도로 악화된 데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힘들게 된 상황까지 겹친 결과 E의 우울장애가 합리적 판단을 못 할 정도로 악화돼 자살에 이르렀다는 의학적 소견을 제시했다. 재판부도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E의 죽음이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라고 봤다.

위와 같이 요양 중 자살을 다투는 소송은 근로자의 업무상 질병 혹은 사고와 자살 간 관계에 대한 정신건강의학과의 소견이 판단에 중요한 근거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①극단적 선택을 한 근로자의 업무상 질병 혹은 사고로 인한 부상이 사망 직전 어떠한 상태였는지 ②근로자가 처한 환경이 어떠했는지 ③근로자가 사망 직전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과 행동을 보였는지 ④업무상 질병 혹은 사고가 정신질환을 유발한 상태였는지 등을 최대한 면밀하게 입증해야 승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배성재 변호사 프로필>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 경제학과
-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석사
-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
- 現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 現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산재 전문변호사
- 現 강북노동자복지관 법률상담위원(2024.4.~)
- 前 서울동부지방법원 실무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