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바라봄의 차이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5-04-07     임지영 기자
변요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애굽기 14:13)

2차 세계대전 당시 한 젊은 병사와 결혼을 해서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살게 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따라가기는 했지만, 사막의 황량함과 혼자 지내야 하는 지루함을 참다못한 그녀는 친정어머니에게 편지를 띄웠습니다.

‘어머니! 저는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메마른 사막이 너무나 싫습니다. 이곳은 살기에 너무 끔찍한 지역입니다.’

이에 어머니가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아주 짧은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감옥의 철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진흙을 보았고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단다.’

그녀는 친정어머니가 보낸 글의 의미를 간파하고 바라봄의 차이를 깨닫고 자신의 별을 찾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녀는 사막의 꽃인 선인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또한 그 근처 인디언의 말과 풍습, 전통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남편의 군 복무기간이 끝날 즈음, 그녀는 사막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좋은 책을 쓰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바라봄의 차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현 이집트)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이끄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환희에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강퍅해진 바로 왕이 애굽의 모든 병거와 군사들을 거느리고 진정한 자유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품고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이르게 되었을 즈음 애굽 군대의 선두가 백성들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지만, 이내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쏟아내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중략)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애굽기 14:11~12)

이는 사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모세’는 달랐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게 백성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13~14)

왜 이러한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바라봄의 차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병거로 무장하고 자신들을 죽이려고 달려오는 애굽의 군대를 바라보았고, 모세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며, 하나님께서 행하실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천재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은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나는 효과가 없는 10,000개의 방법을 발견한 것뿐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그것을 ‘실패’로 본 것이 아니라 전구가 켜지지 않는 또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다고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실패는 그냥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패조차 승리하는 삶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어려운 환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통해 나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히브리서 12:2)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행하는 구원을 보라고 하십니다. 애굽의 군대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직접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에’는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친구 때문에, 가난 때문에, 환경 때문에, 상처 때문에’ 이 꼴이 된 것이 아니라 ‘부모님 덕분에, 친구 덕분에, 가난 덕분에, 환경 덕분에, 상처 덕분에’ 오늘 내가 있음을 감사하는 긍정적인 바라봄으로 더욱 기분이 좋아지고 만사가 더 잘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