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회개와 구원의 확신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누가복음 13:8)
‘성령의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이고 여기서 ‘카리스’는 ‘은혜’이며, ‘마’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은사’ ‘카리스마타’(Charismata)는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주시는 선물(선물)입니다.
특히 이 말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나눠주는 무기를 말하며 승리하고 돌아온 군인들에게 왕이 내리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2:3)는 말씀처럼 ‘구원의 확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는 가룟 유다의 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룟 유다는 구원을 받았을까요? 그는 예수님을 선지자 혹은 메시아로 믿었다는 것을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예수님 곁에서 여정을 함께 했던 그가 예수님을 왜 배신했을까요? 왜 그는 구원과 회개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는 두려움을 느껴 바리새인들에게 돈을 되돌려주고 약간의 회한을 느끼기는 했지만, 회개 대신 이기심의 궁극적인 행위로 자살을 했습니다. 심지어 누가복음 9장 1~6절 말씀을 보면,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은 후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행함같이,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고 기적을 행사하는 능력과 권위를 제자들에게 직접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누가복음 9:1). 이어지는 누가복음 9장 6절에서는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고 기록된 것처럼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가진 제자들에 가룟 유다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한 배신을 하고 자살했을까요? 이는 그가 믿음은 있었지만, ‘구원의 믿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가룟 유다는 ‘구원받은 적이 없다’입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이익으로 그리스도를 따랐던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마치 구원받은 자처럼 행사하다가 내쳐진 자들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 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3:6~9)
이 비유에서 3년 동안 무화과나무를 참고 기다리셨다는 구절은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 회개의 시간이 무제한, 무작정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포도원 지기가 무화과나무 주인에게 기다려 달라고 하는 음성 가운데 모세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떠오르며 반드시 이 땅 가운데 봄이 옴을 느낍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중략)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30~32)
이처럼 회개는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수많은 선택 앞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영적인 도전이 올 때 말을 줄이고 기도할 때 믿음이 더욱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포도원 지기와 모세를 보며 세계적인 방송가인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Leland Cronkite, Jr.)가 말한 ‘내가 방송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이 나를 위해 있다’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다시 말하여 사회도, 교회도, 가정도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부족한 나, 위로가 필요한 나를 위해 가정이 있고, 교회와 나라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주인의식입니다.
이때 내 책임도 내가 지고 남의 책임도 내가 질 수 있으며, 그것으로 오히려 존재 영역이 커질 수 있고 쓰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이 있음에 저와 여러분이 있음을 믿습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