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자기 부인(Self-Denial)과 성숙

/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2025-02-11     임지영 기자
변요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예수님께서 먼저 왜(Why) ‘나를 부인하라’, 즉 ‘자기 부인’(Self-Denial)을 하라고 했을까요?

먼저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 말씀을 통하여 배경부터 설명드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만 데리시고 빌립보 가이사랴로 가셔서 제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태복음 16:13)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마태복음 16:15)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시고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17~18)

그런데 그다음 장면에 가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태복음 16:22)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태복음 16:23)고 크게 책망하시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물론 이는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탄이 베드로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말입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라는 지휘자가 관현악단을 이끌고 많은 대중 앞에서 ‘베토벤-에그몬트 서곡’(Beethoven: Overture Egmont)을 연주했을 때 일어난 일이 생각납니다. 지휘자는 곡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트럼펫 연주자를 청중석에 미리 앉혀 놓고 사인을 보내면 갑자기 일어나서 솔로로 연주하게 했습니다. 이후 곡은 진행되었고 마침내 트럼펫 연주자의 순서가 되자 지휘자는 더 멋진 모습으로 청중들을 향하여 지휘봉을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연주되어야 할 트럼펫은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청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당황한 지휘자는 다시 청중들을 향해 지휘봉을 힘차게 휘둘렀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였을까요? 나중에 이유를 알아보니 트럼펫 연주자가 갑자기 일어나 연주를 하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경비원이 연주를 방해하는 자인 줄 알고 붙잡아서 주저앉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경비원은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사람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트럼펫 연주자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을 막아서며 “안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마치 예수님을 위해서 큰 일을 한 것처럼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자신의 짧은 지식을 가지고, 짧은 생각을 가지고 혹시 시기심과 자기의 뜻이 정당하다는 교만에 젖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이가 있습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 55:8)

왜 베드로는 주님이라고 부른 예수님을 가로막고 나섰을까요? 주님을 원하는 마음으로 물론 겉모습은 그러했겠지요. 그렇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주님을 따르면서 나름대로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메시아로 다윗 왕처럼 등극하시게 되면 자신들이 크게 한 자리를 할 것으로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게 된다면 자신들이 그동안 꿈꿔왔던 모든 것이 다 허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심’(Greed) ‘욕망’(Desire) ‘야망’(Ambition).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과 행동으로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이를 성공으로 이끄는 경우와 실패로, 아니 패악 자로 되는 경우를 제 주변의 경우를 보면, 진정한 회개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났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 부인(Self-Denial)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는 나비가 되기 위해 ‘변태’라는 과정이 필수적이듯이,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번데기로 죽은 것 같이 있다가 때가 되면 고치를 비집고 나와서 나비로 하늘을 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자기 부인을 실천하며 영적으로 자신을 더욱 훈련해 가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여러 어려움 가운데 놓인 문제들을 잘 헤쳐갈 수 있게 해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